지난 11월 14일(현지 시간) 노르웨이 북동부 바다에서 어선 외위구트호가 어획을 위해 친 저인망에 대어가 잡았다는 소식이 전 세계의 이목을 사로 잡았다. 미 해군이 자랑하는 3축 체계의 핵심인 핵추진 잠수함이 노르웨이 어선 그물에 낚였기 때문이다.
미국 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가 노르웨이 매체 NRK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노르웨이 북동부 바다에서 미국 핵추진 잠수함 USS 버지니아 프로펠러가 노르웨이 어선이 설치한 그물에 걸리는 일이 일어났다.
노르웨이의 어부 하랄드 엔겐은 물고기를 잡고 나서 다시 어망을 바다로 던져놓고 해안으로 돌아가던 길에 해안경비대의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어망에 USS 버지니아호 프로펠러가 걸려 2해리(약 3.7㎞)를 끌려갔다는 해안경비대의 호출을 받은 것이다.
논란이 된 핵추진 잠수함은 전장 115m, 무게 7800t의 USS 버지니아호로 노르웨이 트롬쇠 항구에서 출발해 북쪽 해역을 향하던 중이었다.
사고가 발생 직후 노르웨이 해안경비대 선박이 출동해 잠수함 프로펠러에 걸려 있는 어망을 모두 잘라냈다. 주어진 임무 수행 때문에 미 핵추진 잠수함은 유유히 현장을 떠났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물이 손상돼 교체해야 하고 그물에 걸려있던 물고기들은 모두 빠져나갔다. 그물을 던졌던 어선은 뒤늦게 해양경비대로부터 이 사실을 전달받았다.
어선의 선장 엔겐은 현지 매체와 인터뷰에서 “미국 잠수함이 (그물의 주인인) 우리에게 어떤 도움도 요청하지 않은 채 선체에서 그물을 찢어내 버렸다. 그물은 해저에 가라앉았고 우리는 그 그것을 다신 찾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물을 넘어 항해한 선박에 대해 들었지만, 잠수함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며 당혹스럽다운 반응을 보였다.
재미있는 대목은 이날 어선이 첫 어망에서 건져 올린 대구와 가자미 등 어획물은 2만 노르웨이 크로네(252만 원)를 벌었지만, 뜯겨나가 훼손된 어망 가격은 4만∼5만크로네(504만∼630만원)에 달한다고 한다.
미 핵추진 잠수함이 물고기를 잡는 어선이 던진 그물, 약 700만 원의 어망에 잡히면서 세계적 망신살이 뻗친 것이다. 게다가 무게 7800t에 달하는 이 핵추진 잠수함은 그물에 걸린 채 약 4㎞를 더 항해한 후에야 자신들이 ‘낚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 이후 미국 6함대 대변인 피어슨 호킨스 중위는 사고 발생 사실을 확인했다. 호킨스 중위는 비즈니스인사이더에 “사고 원인에 대한 조사가 진행 중”이라며 “미국이 민간 장비 피해에 대한 책임이 있는 경우 비용 배상을 위한 청구 절차가 존재한다”고 설명했다.
추진체계 원자력 대함·대잠 공격형 잠수함
사고가 난 해역은 바렌츠해와 노르웨이해가 접한 곳이다. 바렌츠해는 노르웨이와 러시아의 영해가 접해 러시아에가 민감하게 여기는 전략적 요충지다.
미국-노르웨이 군사 협력이 강화되면서 미국 해군 전략자산이 이 해역에 여러 차례 배치됐다. 지난 6월에는 오하이오급 탄도미사일 잠수함 USS 테네시호와 순양함 USS 노르망디호가 러시아의 군사활동에 대응해 노르웨이 해역에 배치됐다.
노르웨이군은 지난 10월부터 11월까지 미 해군 해리 S. 트루먼 항공모함 타격단과 합동 해군훈련을 실시한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영국 항공모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도 이 훈련에 참여할 예정이다
그런데 군함이 이 해역에서 그물에 걸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1999년 11월 영국 해군의 트라팔가급 핵추진 잠수함이 아일랜드 서쪽에 있는 아란섬에서 훈련하던 중 같은 해역에 있던 일반 어선이 던진 대형 어망에 걸렸다.
당시에도 이번처럼 영국 해군의 잠수한은 어망에 걸린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항해를 이어갔고, 어망과 연결돼 있던 어선은 잠수함에 끌려가다 결국 전복됐다. 이 사고로 당시 어선에 타고 있던 선원 4명이 전원 사망했다.
사고 이후 미 외교·안보 전문지 더 내셔널인터레스트는 “당시 사고 이후 영국 해군 잠수함이 어업 수역 근처에서 운항하는 일은 보기 어려워 졌다”면서 “다만 어선과 잠수함의 ‘전투’에서 어부들은 ‘큰 물고기’(잠수함)이 그물에서 무사히 빠져나가면 운이 좋은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자신들의 그날의 ‘어획물’이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 해군이 핵추진 잠수함 버지니아호는 제러드 버틀러 주연의 영화 ‘킬러헌터(2018)’에 등장하는 ‘아칸소함’가 동일 사양이다. 추진체계가 원자력인 대함·대잠 공격형 원자력 잠수함으로 SSN(Nuclear Powered Submarine)으로 불린다. 러시아의 아쿨라급, 미국의 씨울프급 등이 여기에 속한다. 탄도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탑재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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