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수조에 가득 찬 킹크랩 보이시죠? 시가만 올라가면 전부 돈입니다.”
수조 속 가득 찬 킹크랩은 노후를 걱정하는 A씨에게 있어 장밋빛 미래 자체였다. A씨를 수조 앞으로 이끈 50대 사업가 B씨는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킹크랩 가격 변동성이 크다. 시가에 따라 수익이 나는 수익성 높은 사업”이라고 소개했다. 특히 월급과 같이 통장에 입금되는 수익을 약속했고, A씨를 결국 투자를 결심했다.
초반 B씨 말대로 수익금이 통장으로 들어오자 A씨는 19차례에 걸쳐 총 6억 7400만 원 가량을 B씨에게 건넸다. 하지만 달콤하던 행복도 잠시. 몇 달이 지나지 않아 A씨는 더 이상 B씨로부터 수익금을 받지 못했다. 결국 A씨는 사기 혐의로 B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B씨는 자신 역시 피해자라며 오리발을 내밀었다. A씨와 마찬가지로 다른 동업자 C씨에게 본인도 투자했다 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것. 때문에 A씨에게 수익금도 지급하지 못했다고 변명했다. 결국 사건은 경찰 수사 단계에서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송치됐다.
강릉지청 형사부 전인수 검사(변호사시험 9회)는 수익금 지급 내역이 비정상적이라는 생각에 경찰에 재수사 요청을 했다. 하지만 추가 증거는 나오지 않았고 사건은 그대로 종결됐다. 그렇게 B씨는 사기 사건의 피해자로 남는 듯 했다.
1년 가량이 지난 뒤 전 검사는 다른 검사실에서 재배당된 사건을 검토하던 중 익숙한 이름을 발견 했다. 다름 아닌 B씨였다. B씨가 C씨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사건이 뒤늦게 송치된 것이었다. 전 검사의 머리 속에 지난해 종결된 사건이 떠올랐다.
문하경(사법연수원 37기) 검사와 전 검사는 두 사건 사이 연관성이 있다고 판단, 종전 불송치 사건 기록을 대출받아 검토에 나섰다. 사건 기록을 비교해보니 B씨의 진술에는 모순점이 있었다. 하지만 이미 한 차례 재수사를 요청한터라 또 한번의 재수사는 어려웠다. 전 검사는 고소인으로부터 이의신청을 받아 보완수사에 나섰다.
검찰은 A·B·C씨 사이의 자금 흐름을 통합해 분석했다. 특히 세 사람을 수차례 조사한 결과 B씨의 사기 혐의를 입증해 냈다. 전 검사는 “1억 5000만 원 가량이 제3자로부터 B씨에게로 흘러들어간 점을 발견한 뒤 집중적으로 추궁했다”며 “그 결과 B씨의 기존 진술과의 모순점을 규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검찰 수사 결과, C씨는 사업이 정상적으로 운영되지 않음에도 B씨에게 2억 가량을 뜯어냈다. B씨 역시 어느 순간부터 A씨에게 수익금을 지불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B씨는 A씨의 투자금 중 일부를 수익금인 것처럼 돌려주며 A씨를 속여왔다. B씨가 A씨의 투자금 대부분을 자신의 생활 자금 및 채무 변제로 사용해온 사실도 드러났다. 피해자로만 남을 뻔한 사기범의 실체가 규명된 순간이었다. 검찰은 지난 10월 B씨에게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를 적용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겼다. C씨 역시 사기 혐의로 기소됐다.
전 검사는 “피해자의 일을 자신의 일처럼 여기며 수 천 쪽에 이르는 사건 기록을 함께 검토한 최병훈·하영미 계장님과 김도영 실무관의 노고 덕분에 암장될 뻔한 사건 실체를 규명해낼 수 있었다”며 “고소인의 이의신청에만 의존해야하는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어 “킹크랩 사업은 눈에 보이다보니 피해자들이 속기 쉬운 구조”라며 “앞으로도 민생침해사범에 대해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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