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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한일관계, 착실한 진전이 필요하다

신각수 전 주일대사(니어재단 부이사장)





최근 한일 정부가 사도광산 피해자 추도식에 대한 입장 차이를 보여 추도식을 별도로 치르면서 관계개선 흐름에 찬물을 끼얹었다. 한일관계는 지난해 3월 한국 정부가 ‘제3자 변제’ 해법으로 강제동원 문제의 고르디우스 매듭을 끊은 뒤 셔틀정상외교로 추동력을 얻어 8월 한미일 캠프데이비드 정상회담까지 빠른 속도로 회복됐다. 그러나 이후 관계개선 템포는 정체 기미다.

양국은 7월 사도광산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와 관련 전시관 설치와 추도식 개최를 전제로 등재에 합의했다. 8월 설치한 전시관은 우리 기대에는 미흡하지만 한국 피해자들의 힘들었던 상황을 관람자에게 전달할 수준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1월 추도식에서 우리가 중시한 것은 일본 고위당국자의 참가와 추도사 내용이었다. 추도식 참가인사는 외무성 이쿠이나 아키코 정무관(차관급)이었으나 그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여부가 논란이 됐다. 결국 그의 참배 기사를 보도했던 교도통신이 오보를 인정해 참배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으나 사전에 거르지 못해 매끄럽지 않은 모양새다.

추도사는 추도식 별도개최의 직접 원인으로 일본이 사전 약속을 어긴 것으로 알려졌다. 형식이 추도사가 아닌 인사말이었고 내용도 피해자와 유족의 아픈 상처를 보듬기에 모자랐다. 역사수정주의 경향으로 과거사 인식이 후퇴하고 표현에 매우 인색해진 일본과는 꼼꼼히 교섭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결과로 추정된다.



역사화해는 장기과정이고 양측의 협력이 필수다. 광복 후 80년이 되는 한일관계가 아직도 과거사의 늪에 쉽게 빠지는 것은 양국이 역사화해에 관한 기준·원칙·장치 없이 언론과 국민감정의 흐름에 맞춰 대처하기 때문이다.

과거사문제가 도돌이표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최소한 다음 3개 준칙을 지켜야 한다. 첫째, 서두르지 말아야 한다.(No Rush) 과거사문제는 마음의 문제로 치유에 시간이 필요하고, 서로 다른 인식에서 출발하는 만큼 사실을 찾고 인식 차이를 좁히는 작업이 오래 걸린다. 쉽게 생각하지 말고 서로 객관적 진실에 입각해 가해자의 진솔한 사죄와 반성, 피해자의 관용으로 풀어야 한다.

둘째, 일단 진전이 있으면 거기에서 후퇴해서는 안 된다.(No Backsliding) 과거사문제들이 합의로 이루어졌다가 되살아나는 것은 이행에서 협력이 필수인데 이를 소홀히 하기 때문이다. 합의는 지킨다는 불문율을 서로 존중해야 한다.

셋째, 상호 비난게임에 빠져서는 안 된다.(No Blaming) 상대방에 책임을 전가하는 뺄셈의 접근이 아니라 상대 입장을 역지사지하면서 협력해 과거를 넘어 미래로 나가는 덧셈의 접근을 모색해야 한다. 일본도 한국의 적극적 자세에 호응하는 것이 뺄셈을 덧셈으로 바꾸는 길이란 점을 깨달아야 한다.

북핵 고도화, 북러 밀착,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미중충돌 심화 등 동북아 전략 환경이 크게 불확실한 가운데 한일관계의 전략적 중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한일관계는 역사화해의 축과 전략파트너 협력의 축을 동시 가동해야 앞으로 나아간다.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을 맞아 양국이 건전하고 안정된 한일관계 구축을 위해 지혜롭게 두 축을 밀고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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