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부가 이달 말부터 인공지능(AI) 반도체의 핵심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의 대(對)중국 수출을 사실상 전면 봉쇄한다. 미 상무부는 2일 현재 생산되는 모든 HBM을 대중 수출 통제 대상 품목에 추가한다고 밝혔다. 중국의 첨단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반도체 제조 장비와 소프트웨어도 수출 통제 대상에 넣었다. 이번 조치는 미국산 소프트웨어·장비·기술 등을 사용하는 해외 기업의 제품에도 적용되기 때문에 중국을 수출 시장으로 둔 우리 기업들의 타격이 불가피하다. HBM 매출의 중국 비중이 20% 안팎인 것으로 알려진 삼성전자와 일부 장비·부품 업체들의 수출이 위축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의 ‘AI 굴기’를 막으려는 미국의 규제 강화는 우리 기업들의 수출 영토를 제한하고 메모리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 우위를 위협할 수 있는 악재다. 게다가 내년 1월 ‘미국 우선주의’를 내건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출범하면 글로벌 공급망과 우리 전략산업을 강타할 메가톤급 폭탄이 터질 수 있다.
K반도체가 위기의 터널로 진입하고 있는데 산업 지원에 팔을 걷어붙여야 할 국회는 정쟁에 골몰하느라 경제 살리기 입법을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 연말이면 반도체 시설투자와 연구개발(R&D)에 대해 세액공제를 해주는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이 일몰을 맞는데도 여야는 예산 등을 둘러싸고 싸움을 벌이느라 애써 합의한 세액공제율 상향 및 일몰 연장안을 내팽개치고 있다. ‘반도체특별법’도 보조금 지급과 주 52시간 근무제 예외 적용을 반대하는 거대 야당의 몽니로 연내 통과가 어렵게 됐다.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규제와 중국의 ‘기술 굴기’에 흔들리는 반도체 시장에서 살아남으려면 우선 우리의 기술 경쟁력을 제고해야 한다. 국회는 더 이상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 처리를 가로막지 말고 기업이 맘껏 뛸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줘야 할 것이다. 정부도 미국의 자국 중심 공급망 재편 과정에서 우리 기업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정교한 통상 외교로 대응해야 한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