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습적인 심야 비상계엄령을 막아 세운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야당이 4일 즉각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 절차에 착수했다. 그동안 역풍을 우려해 대통령 퇴진에 선을 그어왔던 민주당은 이번 비상계엄 선포를 ‘내란 행위’로 규정하며 탄핵을 추진할 법적·절차적 명분을 획득했다는 판단을 내렸다. 거야가 ‘탄핵 열차’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면서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의 운명을 결정하게 될지는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의 ‘단일대오’ 여부에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민주당은 이날 긴급 의원총회를 열고 “윤 대통령이 즉각 퇴진하지 않으면 즉시 탄핵 절차에 돌입할 것”이라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어떤 요건도 지키지 않아 원천 무효이고 중대한 헌법 위반이자 법률 위반”이라며 “엄중한 내란 행위이자 완벽한 탄핵 사유”라고 적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윤 대통령 사퇴 촉구·탄핵 추진 비상시국대회’를 열고 “(윤 대통령이 계엄에) 한 번 실패해 다시 시도할 것이지만, 더 큰 위험이 있다”면서 “북한을 자극하고 휴전선을 교란해 무력 충돌로 이끌 위험이 상당히 크다”며 조기 탄핵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 6당은 곧장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탄핵안이 5일 0시를 넘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될 예정인데 이 경우 표결은 6~7일에 이뤄진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려면 국회 의석수 3분의 2인 200명 이상 의원이 찬성해야 한다. 민주당과 함께 탄핵을 당론으로 추진하는 범야권 의석(192석)을 모두 합쳐도 여당에서 최소 8표의 이탈 표가 나와야 탄핵 의결 정족수를 채울 수 있다.
민주당은 여당을 강하게 압박했다. 이 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을 향해 “윤 대통령은 정상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하기 어려운 상태로 5200만 명 국민의 삶을 통째로 책임지고 이 나라 운명을 책임진 사람의 행동으로 도저히 볼 수 없다”며 윤 대통령의 탄핵에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도 “국민의힘 의원들은 분노한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라”며 “양심과 상식을 가진 의원들이 있을 것이라 믿는다. 나라 살리는 길에 동참해달라”고 호소했다.
여당 내에서도 친한계를 중심으로 ‘탄핵론’이 본격 거론되고 있다. 김상욱 국민의힘 의원은 “탄핵에 대한 논의가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정상적인 대통령직 수행이 불가하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조경태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에서 주장하는 (탄핵을 포함한) 여러 가지 해법에 대해 가능성을 열어놓고 이 문제를 들여다봐야 된다”고 했다. 비상계엄 해제 요구 결의안 표결에 참여해 찬성한 친한계 의원들 일부도 탄핵 필요성에 공감대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국민의힘에서 6명의 의원들이 (탄핵에 대해) 국민의 뜻에 따를 수밖에 없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키를 쥔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야당이 추진하는 탄핵 대신 ‘대통령 탈당’ 카드를 제시했다. 한 대표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내각 총사퇴와 국방부 장관 등 책임 있는 사람들에 대해 엄정한 책임을 추궁하기로 뜻이 모아졌다”며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도 제안했지만 이견이 있어 계속 의견을 들어보기로 결론을 낸 상태”라고 했다.
친윤·친한 모두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통된 우려가 분출하고 있지만 윤 대통령의 거취를 두고는 명확한 입장 차이를 보여 일치된 행동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민의힘의 한 수도권 중진 의원은 “당의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기보다 자유민주주의와 헌정 질서 수호를 위해 조기 대선을 준비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반면 ‘박근혜 탄핵’의 후유증을 경험한 중진 의원들은 “여당이니까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며 탄핵·탈당 가능성을 일축했다. 친한계인 박정훈 국민의힘 의원도 “야당이 발의했던 특검은 받더라도 대통령 탄핵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한다”고 했다.
한편 야당은 윤 대통령에 대한 형사 고발도 병행한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과 김용현 국방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을 내란죄로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 장관에 대해서는 이날 탄핵소추안도 발의했다. 조국혁신당도 국가수사본부에 윤 대통령과 김 장관에 대한 고발장을 접수했으며 개혁신당은 서울중앙지검에 윤 대통령 관련 고발장을 제출했다. 민주당은 윤 대통령의 퇴진에 당력을 집중하기 위해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등 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안 표결은 보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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