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3일 한밤중에 비상계엄을 선포하고 4일 새벽 국회의 해제 요구 결의에 따라 해제를 선언한 ‘6시간의 계엄 파동’은 한국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겼다. 외신들은 이번 계엄 선포는 한국의 민주화 이후 첫 사례로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했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윤 대통령의 충격적 조치는 1980년대 이후 한국에서 볼 수 없었던 권위주의적 지도자를 연상시킨다”며 “민주주의의 심각한 후퇴”라고 썼다. 워싱턴포스트는 “40년 전 민주화로 군사정권을 무너뜨린 한국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령 선포는 화요일 밤 충격파를 던졌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는 “활기차고 확고한 민주주의 국가이자 미국의 동맹국인 한국이 불명예스러운 목록에 올랐다”면서 “수십년간 자리 잡은 민주주의가 이룬 성공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헌법상 실질적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 헌법 77조는 ‘대통령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병력으로써 군사상의 필요에 응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계엄을 선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그러나 이번 계엄 발동은 이 같은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상식에서 벗어난 무리수라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계엄 선포 전에 국무회의를 열었지만 제대로 심의하지 않은 데다 반대 의견도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선포 즉시 국회에 통고해야 한다는 헌법 규정도 지키지 않아 절차적 하자 논란을 낳았다. 계엄군이 유리창을 깨고 국회 본청으로 진입한 것도 헌법 위반 소지가 크다. 불법적으로 계엄 선포를 했다면 ‘내란죄’에 해당될 수 있다는 지적도 야권 등에서 나오고 있다.
한반도 안보의 공동 운명체인 미국 측에 계엄을 사전에 알리지 않아 한미 동맹을 훼손한 것도 윤 대통령의 중대한 과오다.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미국은 계엄 선포를 사전에 통지받지 못했다”고 밝힌 데 이어 “민주주의는 한미 동맹의 근간”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은 4∼5일 한국과 워싱턴DC에서 개최하기로 한 제4차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를 연기했다.
더불어민주당 등 야(野) 6당 의원 191명은 4일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민주당은 5일에 탄핵소추안이 국회 본회의에 보고되도록 한 뒤 6∼7일에 이를 표결할 계획이다. 야권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을 거쳐 조기 대선을 실시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을 겨냥해 “무력을 동원한 비상계엄 조치가 실효성이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 국지전이라도 벌일 것”이라며 탄핵을 주장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내각 총사퇴, 국방장관 해임 요구’ 등을 후속 대책으로 제시했다.
윤 대통령은 위헌이라고 지적받는 계엄 파동을 일으켜 민주주의 위기를 초래한 책임을 스스로가 모두 감당해야 할 것이다. 거대 야당의 탄핵 남발과 예산 폭주로 인한 국정 마비 등을 계엄의 사유로 거론했지만 그런 점을 내세워 계엄 발동 무리수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 윤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국민 불안을 조장한 데 대해 책임을 통감하는 한편 대국민 사죄를 하고 계엄 선포의 진상을 낱낱이 밝혀야 한다. 사의를 표명한 김용현 국방부 장관 등 계엄 파동과 관련된 장관·참모진에 대한 문책과 해임도 필요하다. 내각·대통령실 총사퇴와 대폭적 인사 교체 등의 전면 국정 쇄신 조치도 뒤따라야 한다.
계엄 저지에 한목소리를 낸 여야는 탄핵·입법·예산 등을 둘러싼 무한 정쟁을 접고 정치를 복원해 경제와 민생 살리기에 적극 나서야 한다. 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은 앞으로 상식과 헌법가치를 기초로 조속히 정치를 정상화해 국민의 불안을 없애고 국정을 안정시켜야 할 것이다. 그래야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2기 출범 등 국제 정세 급변 속에서 우리 국익과 안보를 지켜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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