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해제의 후폭풍은 의료개혁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의료개혁의 구체적 실행방안을 논의하는 사회적 협의체인 대통령 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는 예정된 소위 일정을 무기한 연기했다. 대한병원협회 등 특위에 참여 중인 의료계 단체들도 더 이상의 참여는 의미가 없다고 보고 철수를 고심 중이다.
4일 보건복지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의료개혁특위 산하 필수의료·공정보상 전문위원회 일정이 무기한 연기됐다. 5일 예정된 의료사고 안전망 전문위원회는 서면 심의로 대체하는 것으로 계획을 수정했다.
모두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등 현 시국의 영향으로 알려졌다. 복지부 관계자는 “의료개혁특위 회의는 당분간 연기하기로 했다. 이번 주 상황을 봐야 된다”고 말했다.
의료개혁특위는 비급여·실손보험 개혁, 전공의 수련환경 개선, 의료사고 안전망 대책, 상급종합병원 구조전환 등 개혁 과제들을 논의하고 있다. 이달 말 의료개혁 2차 실행방안을 발표한다는 계획이나 현재의 정국 혼란으로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회의 일정이 줄줄이 취소되는 상황에서 개혁과제를 논의하기가 쉽지 않은 탓이다. 특위에 참여 중인 한 위원은 “시국 상황 때문에 대면회의가 어려워지자 예정된 12월 말 발표를 위해서 갑자기 서면 심의를 하자고 하는 것 같다”며 “내용을 받아봐야 하겠지만 서면 심의로는 안 될 것 같아서 반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전날 비상계엄 선포 직후 계엄사령부가 포고령에서 전공의 등에 대해 48시간 이내 복귀하지 않으면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언급한 점도 의료계를 자극한 모양새다. 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병협 관계자는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일이 진행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특위 철수를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의사단체 사이에서도 병협에 특위 철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안나 의협 대변인은 이날 보도자료에서 의료개혁특위에 대해 “의사 직군을 반국가 세력으로 일컫는 정부 주도의 의미 없는 협의체”라며 “병협은 계엄 정권의 특위에서 탈퇴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의료개혁특위에 참여하고 있는 환자단체와 시민단체 등 수요자단체는 특위에서 의료개혁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남은경 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특위에서 의료체계 전반에 대해 바람직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어서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는 건 원치 않는다”며 “오래 전부터 제기됐던 문제인만큼 정권과 무관하게 어떤 형태든 논의는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안기종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대표는 “의료계의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참여한다는 것이 우리의 기본 입장”이라면서도 “의료계가 특위에서 빠진다면 과연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질지 모르겠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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