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이후 여론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고 보는 더불어민주당이 전방위 ‘탄핵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여당은 사상 초유의 감사원장·중앙지검장 탄핵소추에 대해 “정치 폭력이자 입법 테러”라고 반발했지만 민주당은 다수 의석을 앞세워 사실상 행정부의 인사권까지 좌지우지할 태세다.
민주당 등 범야권은 5일 여당인 국민의힘이 불참한 가운데 진행된 본회의에서 최재해 감사원장과 이창수 서울중앙지검장, 조상원 서울중앙지검 4차장, 최재훈 서울중앙지검 반부패2부장 등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연이어 통과시켰다. 비상계엄 사태에 따른 윤석열 대통령의 퇴진에 당력을 집중하자고 했지만 여당이 ‘대통령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정하면서 최 원장 등을 우선 탄핵하기로 방향을 틀었다.
최 원장 탄핵소추안이 국회 문턱을 넘으면서 감사원은 곧바로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된다. 감사원법에 따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내려질 때까지 재직 기간이 가장 긴 조은석 감사위원이 권한대행을 맡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 서울고검장·법무연수원장 등 검찰 요직을 거쳐 임명된 조 위원은 대표적인 야당 측 인사로 꼽힌다. 감사원의 주요 감사가 지연되거나 감사 처분 결정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최 원장은 탄핵소추안 의결 직후 입장문을 통해 “정치적 탄핵 추진으로 국가 최고감사기구인 감사원의 독립성에 심대한 위해를 초래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이라면서도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에 성실히 임해 감사원이 조속히 정상화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직무정지를 겨냥한 ‘탄핵 카드’를 앞세워 사정기관 핵심부를 거듭 압박하는 모양새다. 민주당이 22대 국회 들어 제출한 탄핵안은 총 12건이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로 범위를 넓히면 야권이 탄핵을 추진했던 대상자만 19명에 이른다. 윤석열 정부 이전 역대 정부를 통틀어 국회에서 발의된 탄핵소추안(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 김도언·김태정·박순용·신승남 전 검찰총장, 임성근 전 판사 등) 전체 건수를 훌쩍 뛰어넘는 규모다. 최 원장과 이 지검장을 포함해 사정기관 고위 공무원만 13명이 탄핵 대상에 이름을 올리며 주요 타깃이 됐다. 이 때문에 여당에서는 ‘이재명 방탄용 탄핵’이라 규정하고 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 로텐더홀에서 야당의 탄핵 강행에 대한 규탄대회를 열어 “집값 통계 조작,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 사드 기밀 유출까지 문재인 정권의 국기문란 범죄가 감사를 통해 밝혀지니 보복의 칼을 들고 나왔다”며 “검찰 지휘부 탄핵도 이재명 대표와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의원을 수사하는 검찰의 직무를 정지시켜 손발을 잘라내겠다는 치졸한 정치 보복”이라고 날을 세웠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이재명 방탄을 넘어 체제 파괴, 헌정 파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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