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언론은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한국의 탄핵 정국을 발 빠르게 보도하면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국의 야(野) 6당이 제출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일본 중시 외교’에 대한 비판이 언급돼 있다는 점을 들어 향후 한일 관계에 미칠 영향에 주목하는 분위기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7일 한국의 6개 야당이 지난 4일 국회에 제출한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일본 중시 외교정책에 대한 비판이 명시돼 있다고 보도하면서 “외교 자세가 180도 다른 보수와 진보의 가치관 차이를 드러냈다”고 밝혔다.
닛케이는 탄핵안의 외교 부분에서 ‘친일적 정책이 전쟁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을 언급했다. 그러면서 ‘북한과 중국, 러시아를 적대시하고 일본 중심의 기이한 외교정책을 주장하며, 친일적 인물을 정부 요직에 임명했다’, ‘가치 외교라는 명목으로 지정학적 균형을 무시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닛케이는 이 같은 비판을 짚은 뒤 “한국 언론에서도 이런 주장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나온다”며 탄핵안에 계엄과 무관한 비난까지 포함돼 있다는 일각의 지적도 함께 전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의 현 상황이 한일 관계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는 입장과 함께 언급을 삼가고 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지난 5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 출석해 “윤 대통령이 일한 관계의 개선이 한국의 국익이라는 신념을 갖고 추진해 왔으며 그런 윤 대통령의 노력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이어 “이후 한국의 상황은 예단하기 어려워 더 이상 언급은 삼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이시바 총리는 당초 내년 1월 한국을 방문하려던 계획을 단념하고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를 방문하는 쪽으로 조정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한국 내 정치·사회적 혼란 상황을 반영해 일정을 보류한 것으로 보인다.
아사히신문은 복수의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이시바 총리가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인한 한국 내 혼란을 이유로 한국 방문 대신 동남아시아 방문을 조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시바 총리는 다음 달 초 방한해 윤 대통령과 회담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었다. 지난 10월 총리 취임 후 양자 외교 목적으로 방문하는 첫 국가로 한국을 선택함으로써 한국을 중시하는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도 담긴 일정이었다.
그러나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 내 혼란이 이어지면서 방한 계획을 단념했다고 일본 정부 관계자들은 설명했다.
이시바 총리는 방한을 취소하는 대신 내달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주도국인 인도네시아를 방문해 프라보워 수비안토 대통령과 회담하는 쪽을 추진하고 있다. 일본 외무성은 안보 분야에서 협력의 뜻을 같이 하는 국가에 방위장비품 등을 무상 제공하는 ‘정부 안전보장 능력강화 지원(OSA)’ 제도의 올해 대상국 중 한 곳으로 인도네시아를 이달 결정하기도 했다. 아사히는 “10월 취임한 프라보워 대통령은 국방장관 경험이 있어 일본으로서는 안보 면의 협력을 진행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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