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열 외교부 장관이 8일 또다시 필립 골드버그 주한미국대사를 접견했다. 지난 5일에 만난 후 불과 사흘만으로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에도 알리지 않고 갑작스럽게 계엄령을 발동한 것에 대해 미국이 강도 높게 비판을 이어가자 이를 수습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9일 외교부에 따르면 조 장관은 8일 밤 골드버그 대사를 접견해 “한국 자유민주주의의 회복력과 견고하게 지속해온 법치주의를 토대로 현재의 어려운 상황을 극복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조 장관은 지난 5일에도 골드버그 대사를 만나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 이후 국내 상황을 설명한 바 있다.
양측은 5일에 이어 이날에도 흔들림 없는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노력키로 거듭 뜻을 모았다. 조 장관은 지난 6일에는 토니 블링컨 미 국무부 장관과 전화통화를 가지고 계엄 사태 이후 상황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 블링컨 장관은 각급 긴밀한 소통에 뜻을 모으면서도 “향후 모든 정치적 이견이 평화롭고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해결되기를 강력히 희망한다”며 더 이상의 혼란이 생겨선 안 된다는 경고성 발언을 했다.
조 장관이 미국과 접촉을 이어가는 데는 우리 정부가 계엄령 선포 전 핵심 동맹국인 미국과도 상의하지 않았다는 점에 미국이 분노하는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미 행정부 내에서는 러시아·이란 등 미국의 적대국들도 중대한 행위를 할 때 미국에 미리 통보를 하는데 핵심 동맹인 한국이 미국을 ‘패싱’했다는 것에 크게 놀라는 분위기가 흐르고 있다.
미국 내 고위 관료들은 윤석열 정부에 잇따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4일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에 대해 “심각한 오판을 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미 국무부 인사가 동맹국의 지도자에 ‘심각한 오판’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그만큼 윤 대통령의 계엄령을 강도 높게 비판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바이든 행정부 당국자 역시 7일(현지시간) “우리는 한국의 민주적 제도와 절차가 헌법에 따라 온전하고 제대로 작동할 것을 계속해서 촉구한다”며 “이를 달성하기 위해 한국의 관련 있는 당사자들과 접촉을 유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는 건강한 민주주의의 필수적인 요소이며 모든 상황에서 존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빅터 차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겸 조지타운대 교수가 한국이 2차 계엄령을 선포한다면 미국이 대응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파이낸셜타임즈(FT) 기고문에서 한국의 위기는 끝나지 않았고 윤석열 대통령의 2차 계엄령 선포 가능성이 있다며 “윤 대통령은 사임을 완강히 거부했으며 야당 대표를 부패 혐의로 감옥에 가두어 다음 선거에 출마할 자격을 박탈하려 할 수도 있다. 이것이 어떻게 끝날지는 불확실하지만, 악몽 같은 시나리오는 군대가 거리로 복귀하는 것이다. 윤의 분노와 좌절은 정치적 혼란 속에서 그를 두 번째 비상사태 선언으로 이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두 번째 계엄령 선포는 워싱턴이 아시아, 경제 안보, 유럽 전쟁에 대한 바이든과 동맹국의 전반적인 외교 정책을 확고히 지지해 온 한국 대통령에 맞서도록 강요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즉 두 번째 계엄령이 발동되면 미국이 윤석열에게 맞서게 되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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