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침묵한다. 윤석열 대통령의 돌발적인 비상계엄 선포로 1주일 사이 탄핵 소추안 표결까지 진행될 정도로 우리 사회가 대혼란에 빠졌지만 통상 월요일자 6면에 남측의 반정부 집회 소식을 알리던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이번 주에 아무런 내용을 전하지 않았다.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오물풍선의 원점 타격을 검토했다는 북한 입장에서 자극적인 소식이 나왔는데도 무반응이다. 전문가들은 “북한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남측에서 알아서 ‘1급 기밀’을 쏟아내는데, 굳이 자극할 필요가 전혀 없다고 느끼는 것”이라 우려했다.
북한 노동신문은 9일에도 남측의 계엄 관련 소식을 전혀 전하지 않았다. 북한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매주 한국의 일부 단체가 개최하는 대통령 탄핵집회 소식을 여러장의 사진과 함께 실어왔다. 9월 30일 전에는 화요일, 이후에는 월요일마다 시위 소식을 게재했는데 지난 2일에는 촛불행동이 지난달 30일 주최한 ‘건희방탄, 우크라이나개입 윤석열을 타도하자’ 집회를 보도하기도 했다. 노동신문 외에도 조선중앙TV,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도 남한의 상황을 알리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민감한 사안의 경우 일부러 보도를 늦춘다. 남측의 계엄과 탄핵 표결 뿐 아니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재선, 북한군의 우크라이나 전쟁 파병 등도 아직 주민들이 보는 대내 매체에는 보도되지 않았다.
하지만 현 남측 상황의 보도를 자제하는 데는 다른 속내가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우선 비상계엄이 시민들의 힘으로 해제되고 탄핵소추안 진행 과정에서 수만 명의 시민이 반정부 집회에 나서는 현 상황이 북한 인민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북한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등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민주주의 상황을 봤던 만큼 굳이 개입했다가 역효과를 부를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단 의미다.
또 혼란한 상황을 틈타 군사 기밀이 마구잡이로 폭로되는 점도 북측이 행동을 조심하는 이유 중 하나란 분석이다. 북한 입장에서는 가만히 있어도 1급 기밀이 흘러나오는데 개입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지난 10월 김 전 장관이 평양에 무인기를 보냈다’ ‘김 전 장관이 대남 오물·쓰레기 풍선 원점타격 지시를 했다’ 등의 군사기밀이 이곳 저곳에서 새어나오고 있다. 계엄 상황에서 국군의 무장 수준에 대해서도 상세히 보도가 이뤄졌다.
박원곤 이화여대 통일학연구원장은 “지금 이곳저곳에서 나오는 보도 내용은 사실 여부를 차치하고 하나하나가 다 기밀 중 기밀에 해당하는 내용”이라며 “추후 북한이 이를 두고 국제사회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도 높은 데다 미국도 한국이 어느 정도로 정보를 제공했는지 판단할 근거로 삼을 수 있다. 매우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군사안보 전문가는 “지금 군도, 국정원도, 야당도 언급하지 말아야 할 내용을 자꾸 발설하고 있다”며 “야당도 정권을 잡아봤지 않는가. 대통령의 계엄이 용서할 수 없는 행위임과는 별개로 ‘훈련을 언제 어떻게 했다’ ‘무장을 어떻게 했다’와 같은 이야기를 공개적으로 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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