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주요 정책과 법령·예산 등을 심의하는 국가 최고 정책 심의기관인 국무회의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장관들의 잇단 사직과 탄핵으로 헌법이 정한 최소 국무위원 15명 선이 깨질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의장인 대통령 대신 회의를 주재할 부의장인 한덕수 국무총리마저 내란죄에 휘말려 물러날 가능성까지 높아지는 분위기다.
이처럼 행정의 수반인 대통령의 부재와 대통령 직을 대신해야 할 총리마저 손발이 묶이면 최악의 국정 공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9일 더불어민주당에 따르면 박성재 법무부 장관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곧 국회에 제출되면 12일 본회의에서 표결할 예정이다. 앞서 비상계엄 후폭풍으로 탄핵안이 발의된 김용현 국방부 장관과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모두 표결 전 물러났다. 박 장관이 이들처럼 사직하지 않더라도 거대 야당이 탄핵 표결을 하면 바로 직무가 정지되기 때문에 법무부는 이번 주말 차관 직무대리 체제를 피할 수 없다.
문제는 장관에 대한 잇따른 탄핵 불똥이 국무회의를 와해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 제88조 2항은 ‘국무회의는 대통령·국무총리와 15인 이상 30인 이하의 국무위원으로 구성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현재 국무회의는 윤석열 대통령이 의장을, 한 총리가 부의장을 맡았으며 국무위원은 각 부 19명이다.
그러나 여성가족부 장관은 현재 공석이고 국방부 및 행안부 장관이 물러난 데 이어 법무부 장관마저 직무가 정지되면 국무위원은 15명으로 줄어든다. 여기에 야당은 3일 비상계엄령 선포 직전 열린 국무회의에서 찬성한 국무위원들도 모두 내란 가담자로 보고 있어 다른 장관들 역시 탄핵 열차에 오를 여지가 있다. 차관이 대신 국무회의에 참석할 수 있지만 정족수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국무위원이 14명 이하로 떨어질 경우 국무회의가 성립되는지에 대한 학자들의 의견은 엇갈린다.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과 총리는 국무위원이 아니므로 장관 공석이 더 늘면 국무회의 개의가 어려울 수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15인의 숫자는 대강의 수준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1인이 모자란다고 국무회의를 열지 못한다는 해석은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이 같은 문제를 의식한 듯 총리실은 조항을 보다 폭넓게 풀이, 대통령과 총리를 포함해 “국무회의 구성원은 현재 18명”이라며 문제될 것이 없다는 입장이다.
관대한 해석으로 대통령과 총리를 포함하더라도 15명 선 사수는 간단하지 않다. 민주당은 한 총리를 내란죄 혐의로 국가수사본부에 고발하고 탄핵 검토에 착수했다. 실현될 경우 의장과 부의장이 모두 빠진 채 부총리급이 대신 주재하게 되는데 이는 사실상 식물 국무회의 상태나 다름없다.
공석인 장관을 임명해 국무위원을 채우는 방안은 이론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재 여건상 어려워 보인다. 윤 대통령이 인사권을 가동하면 탄핵 여론이 더 커질 수 있고 이를 총리가 대신하기에는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게 학자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지금까지 국무회의는 차관회의에서 통과된 안건을 처리하는 상징적 의미가 강했다. 하지만 12·3 비상계엄 여파로 정책 심의기관의 역할이 멈춘다면 국정 공백을 피할 수 없다. 헌법 제89조에 따라 반드시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17개 조항이 있다. 정책부터 법률과 시행령 개정, 예·결산, 계엄과 해제, 군사에 관한 중요 사항 등 사실상 정부의 핵심 활동이 포함돼 국무회의가 멈춰서면 국정운영은 중단이 불가피하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국무회의 개최에는 문제가 없지만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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