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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일 칼럼] 주연은 시장, 정부는 조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지금 대한민국 정치판은 시끄럽다. 국민이 정부나 정치권에 바라는 것은 사실 별 것 아니다.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일자리와 미래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터전, 즉 먹고 사는 문제와 더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말로는 소시민을 위한다면서도 실상은 자기들만의 세상 속에서 화려한 수사로 거대한 정치 담론을 앞세우며 자신들을 위한 정쟁만 일삼고 있다. 그들 눈에는 먹고 사는 문제가 소시민의 철없는 소망으로 사소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그 소박한 소망을 제대로 채워주지 못한 정권은 매번 교체되어 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우리나라 현대사에서 먹고 사는 문제를 가장 훌륭하게 풀어 낸 것은 박정희 정권이었다. 정치적 독재자라는 불명예를 벗을 수는 없지만 대한민국의 경제발전만큼은 전 세계가 부러워하는 최고의 성과였다. 고속 성장을 바탕으로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민주화 바람이 불면서 1990년대에는 분배에 대한 요구도 확산되었고 금융경제위기를 겪으며 사회안전망에 대한 국민 인식도 높아졌다. 이런 사회적 변화의 흐름을 타고 분배를 핵심적인 정치 아젠다로 내세우며 진보를 자처하는 정치 세력도 확대되었다.

원래 성장 없이 분배를 논하는 것은 제로섬 게임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속이 어렵다. 그래서 많은 선진국은 시혜성 복지 대신 근로 복지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추구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 진보는 시혜성 복지라는 포퓰리즘에 의존하였고, 한번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운 포퓰리즘의 특성상 정부 지출이 가속화되었다. 늘어나는 세금 부담은 민간 소비와 투자를 줄여 혁신의 유인을 위축시켰고 결국 성장 잠재력도 쇠퇴하기 시작했다. 뿐만 아니라 대기업 노조와 정치적으로 연대하면서 거기에서 배제된 중소하청업체 비정규직, 청년 실업자 및 영세 사업자들에게 불이익이 돌아가는 이중구조를 만들어냈다. 분배를 개선하겠다며 세금은 많이 걷었지만 성장도 놓치고 양극화도 막지 못했다.



보수는 어땠나? 보수는 성장을 내세웠지만 아직도 정부 주도의 성장이라는 구시대적인 발상에 사로잡혀 있다. 반도체와 인공지능(AI)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영세한 백반집이나 치킨 집에서 세금을 걷어 반도체와 AI를 지원하는 것이 정답일 수는 없다. 영세업자들이 힘들여 번 돈을 은행에 저축하고 그렇게 모인 자금이 반도체와 AI 등 혁신적인 신산업에 투자되는 것이 성장을 도모하면서도 영세업자의 세금 부담은 낮추어 균형을 이루는 방법이다. 이렇게 시장에서 충분히 해결될 것을 정부가 세금을 걷어가며 간섭할 필요는 없다. 정부 주도의 성장은 박정희 시대와 같이 시장이 아직 성숙하지 못했던 시기에 어울리는 정책이었지만 선진화된 대한민국에서는 시장에 맡기는 것이 훨씬 더 효율적이다. 주입식 교육이 구구단을 외울 때는 유용할지 몰라도 박사과정에서는 쓸모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우리 국민은 포퓰리즘을 배척할 만큼 성숙한 시민의식을 갖추었을 뿐 아니라 정부 주도의 성장이라는 정책의 실효성을 평가할 역량도 갖추었다. 무한한 국제경쟁의 시대에 우리 기업들의 시각은 세계로 향하고 미래를 기획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이들을 정치권과 정부 앞에 줄 세울 때가 아닌 것이다. 시장 기능이 활성화되고 기업 활동이 자유로워지면 경제는 스스로 성장하는 동력을 갖는다. 그리고 성장을 통해 늘어난 파이를 취약계층과 같이 나눌 때 성장과 분배가 진정한 균형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얼마 전 1000명의 백종원을 만들겠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런 사업가는 정부가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조련되는 것이다. 그렇게 경쟁을 이겨낸 사업가와 기업들 덕에 그나마 2~3%대 성장이라도 하고 있다. 그런데 또 정부가 간섭을 하겠다니 덜컥 걱정부터 앞선다. 게다가 요즘은 여러 정치 세력들이 비상계엄 사태를 둘러싸고 저마다의 셈법으로 각축을 벌이는 탓에 사회 혼란까지도 가중되고 있다. 자신들이 벌이는 이 혼란의 부담이 우리 경제, 기업과 먹고 살기 바쁜 소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전가되고 있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더 늦기 전에 정부와 정치권은 시장에 주연 자리를 돌려주고 그 주연이 더욱 돋보이도록 명연기를 할 수 있는 조연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래야 민심도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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