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사흘 날인 6일 계엄 지휘관 3인방 중에 한 명인 곽종근 육군특수전사령부(중장급) 사령관이 특전사로 찾아온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주·박선원 의원과 만나 “최초 임무는 국회 시설을 확보하고 인원을 통제하란 임무를 받아서 들어갔다”며 “선관위도 시설, 외곽 확보를 (해서) 관련 장비가 밖으로 나오지 않도록 경비하는 임무였다”고 했다.
곽 사령관은 이어 “본회의장에 들어와 전임 (김용현 국방) 장관으로부터 ‘국회의사당 안에 있는 인원을 밖으로 빼내라’(는 지시를 받았다)”고 했다. 다만 우발상황에 대비해 실탄을 탄통에 담아 현장에 보낸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그는 또 ‘윤 대통령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거나 전화를 받았느냐’는 질문에 “707(특임단)이 이동할 때 어디쯤 이동하고 있느냐고 전화를 받았다”며 “작전 중간, 국회 도착하기 전 쯤인데 정확히 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고, ‘대통령이 직접 사령관 비화폰으로 전화를 걸었냐’는 질문에는 “그렇게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국군 최정예 특수부대로 꼽히는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제707특수임무단이 윤 대통령의 지시에 계엄군으로서 국회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무단 진입한 사실을 인정한 것이다.
특전사령부는 예하 부대가 12·12 군사반란과 5·18 민주화운동에 진압군으로 가담하는 흑역사가 있는데 이번 비상계엄 선포 당시에도 1공수특전여단(준장급)은 국회의사당에 난입했다. 안타깝게도 특전사의 모체인 1공수여단은(당시 1공수특전단) 12·12 군사반란 때도 반란군으로 참여한 바 있다.
특전사 예하 부대 12·12 군사반란 때 참여
707특임단은 대한민국 육군특수전사령부의 직할(특수)부대다. 평시에는 국가급 대테러 특수부대이며, 전시 또는 준전시 상황에는 국가적 차원의 극비 임무를 비롯해 각종 특수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특히 유사시에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비롯해 북한군 수뇌부에 대한 참수작전이 시작되면 가장 결정적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특수부대가 국회 진입과 국회의사당 점거 작전 선두에 선 것이다.
대한민국 최고 중에 최고로 꼽히는 특수부대 707특임단, 그러나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707특임단은 탄생 배경에는 계엄과 깊은 연관이 있다.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즉 신군부가 주도한 군사반란이 있었다. 최근 개봉돼 화제가 된 영화 ‘서울의 봄’으로 잘 알려진 12·12 군사반란 때 신군부인 최세창 준장이 이끈 제3공수특전단은 당시 정병주 특수전 사령관을 무력으로 불법 체포하는 반란을 꾀했다. 이 과정에서 사령관 부관인 김오랑 소령을 사살하는 등 건군 이래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참극이 벌어졌다.
결국 12·12 군사반란은 성공했다. 이후 특전사는 신군부 인사, 즉 ‘하나회’ 출신들로 모두 채워졌다. 주목할 점은 신군부가 12·12 군사반란을 상기하며 똑같은 방식의 군내 군사반란 가능성을 우려해 특전사 수장인 특전사령관을 전담 경호할 부대가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707특임단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707대대’를 창설했다.
이후 1986년 아시안게임과 1988년 서울 올림픽을 맞아 707대대는 특전사령관을 위한 경호부대에서 국가급 대테러부대로 전환하는 계기를 맞았다. 곧바로 707대대에서 ‘707특수임무대대’로 개편된다. 그러다 2019년 2월 1일에는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대량응징보복이 강조되면서 참수작전의 중요성이 커졌고 707특수임무대대는 ‘707특수임두단’으로 확대 개편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참고로 제5공화국 시절 들어서 군사반란을 대비하기 위한 707대대에 더해 특전사 내에 대테러부대인 606부대를 개칭해 대통령의 친위 경호부대인 대통령 전담 경호 27특공부대도 창설됐다.
1961년 5·16 군사정변 때도 육군 특전사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제1공수특전단(대령급)이 참가해 서울로 진입했고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 그리고 5·18 민주화운동에 투입된 바 있다. 이번 12·3 비상계엄도 여기없이 특전사는 계엄군으로 동원됐다. 이 때문에 육군 특전사는 대한민국 건국 이래, 군사반란과 계엄이 있을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한 흑역사를 남기는 진기록을 세우게 됐다.
특전사 예하 공수특전단은 1972년 9월 11일 대령이 지휘관인 ‘단급’ 부대에서 준장이 지휘관인 ‘여단급’ 부대로 증편돼 공수특전여단으로 격상됐다.
이처럼 군 최정예 특수부대인 707특임단을 지휘하는 육군 특전사는 어떻게 역사적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대한민국 역사에 큰 오점을 남기게 됐을까. 가장 큰 이유는 정치군인들에게 이용당했다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 때문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우리 군의 전시 및 평시 작전통제권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현재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평시작전통제권과 전시작전통제권으로 나눠져 있다.
중요한 대목은 1950년 7월 14일 한국전쟁 때 이승만 대통령은 유엔군사령부 사령관에게 작전 지휘권을 이양했다는 것이다. 또 1954년 11월17일에 ‘한국에 대한 군사 및 경제원조에 관한 한·미합의의사록’을 체결해 유엔사가 대한민국 방위 책임을 부담하는 동안 한국군을 유엔군사령관의 작전통제 아래 계속 두기로 합의했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4년 11월 한미상호방위조약이 발효되면서 작전 지휘권은 작전통제권으로 명칭이 변경됐지만, 안타깝게도 한국군의 작전통제권도 1978년 11월 7일 창설된 한미연합사령부가 유엔군사령부에서 넘겨 받으면서 현재까지 한미연합사령부로 갖고 있다.
국군 작전통제권은 한미연합사가 통제
이런 탓에 한국군은 제2야전군사령부(현 제2작전사령부),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방위사령부), 육군 특수전사령부를 빼고는 훈련 목적이라도 한국군 병력을 이동시키려 할 때 무조건 미군의 통제를 받아야 했다. 그래서 군사반란 같은 계엄 상황이 발생하면 계엄사령부는 특수전사와 수방사를 동원했고, 군의 명령체계 특성상 항명을 할 수도 없기에 이들 부대들은 역사에 오점으로 기록되는 흑역사 현장에 투입된 것이다.
물론 12·12 군사반란 당시 9사단 이동과 5·18 민주화운동 당시 20사단 광주 투입 등 전방부대가 이동하는 과정에서 한미연합사령부는 이를 통제하지 못해 책임론이 거론되기도 했다.
그나마 김영삼 정부 시절이던 1994년 12월 1일 0시부로 한국군은 평시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면서 평시 작전을 지휘하고 있다. 미국 측과의 협의를 거쳐 44년 만에 되찾아 온 셈이다.
참고로 평시라고 해도 모든 작전권을 한국이 행사하지는 않다. ‘전투준비태세(Defense Condition)’ 혹은 ‘방어준비태세로’ 불리는 ‘데프콘(DEFCON) 4’의 경우에만 한국군이 지휘하고, 데프콘 3~1까지는 한미연합사가 지휘권을 갖는다.
따라서 전시 및 평시 작전통제권에 대한 지휘권을 생각해보면, 비상계엄 시 계엄사령부가 가용한 부대는 육군 특전사와 수방사 등이다. 무엇보다 이들 부대는 서울과 가까운 거리에 주둔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효과적 병력 이동 수단이다.
아울러 이번 비상계엄에 투입된 군정보수사기관인 국군방첩사령부와 국군정보사령부는 국방부 장관이 직접 지휘하는 국직부대라 계엄 선포가 되면 동원될 수 있는 최적의 지원 부대다.
1993년 김영삼 정부가 출범하고 군사정권의 핵심인 전두환·노태우가 주도한 ‘하나회’를 숙청하면서 군의 변화를 모색했다. 군 문화 혁신과 군 민주화를 추진했지만, 군사정권의 친위부대 역할을 맡았던 특전사의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게 공통적인 평가다.
여기에 수도권에 위치한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사령부급(중장) 특수부대를 지휘하는 특수전사령관은 국군방첩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과 함께 상당한 요직으로 꼽힌다. 군 내 최고의 엘리트 코스로 대장으로 진급할 기회가 많아 인사권을 가진 정권에 절대적 충성을 보여왔던 게 사실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와 윤석열 정부는 특전사령관을 임명 한지 1년도 안 돼 지상작전사령관이나 육군참모총장으로 진급시키는 인사를 단행했다.
사실 특전사는 부사관이 주축이 되는 특수부대다. 육군이 지난 4월 발표한 2024년도 1분기 부사관 모집계획 대비 선발률을 살펴보면 비전이 없다는 까닭에 육군 부사관의 정원 미달은 심각한 상황이지만, 유일하게 부사관 정원 대비 모집 인원을 초과한 부대는 특전사 뿐이다. 특전사는 공수훈련 등 고강도 특수 훈련을 실시하는 최정예 요원들로 자긍심·사명감이 높고 위험근무수당 지급 등 처우도 상대적으로 다른 부대 보다 높은 편이라서 모집률이 보여주듯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부대다.
문제는 이들 최정예 요원을 지휘하는 지휘부가 대부분 육군사관학교 출신 장교들로 채워져 이번에도 육사 출신 사령관과 여단장이 주요 지휘관 자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선포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시로 계엄군으로 투입되는 과오를 범해 또다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하게 됐다.
현재 특전사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명령에 무조건 따라야 하는 군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는 부분도 100% 동감한다.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군 내부적으로 철저한 진상 조사를 통해 모든 진상을 공개해 신뢰 회복과 함께 진정으로 국가와 국민을 위하는 최정예 특수부대인 특전사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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