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이 본격화되면서 1기 신도시를 비롯한 정비사업 추진 단지 주민들의 불안감이 확산하고 있다. 재건축·재개발 특례법과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등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안이 국회에서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재건축 닻을 올린 1기 신도시에서는 일정 연기에 따른 분담금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입법 공백에 정비사업 추진 동력이 약해지면 주택 공급에도 차질이 빚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업계에 따르면 당초 국토교통부가 이달 중 발표할 예정이었던 유휴부지와 영구 임대주택 정비 등을 골자로 한 1기 신도시 이주대책 발표가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1기 신도시 재건축 선도지구에 한해 오는 2026년 사업시행 및 관리처분계획 인가를 마치고 2027년 착공해 2030년 입주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2026년부터 총 3만 6000가구의 이주가 시작돼야 한다.
정책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정부가 1기 신도시 주민들의 금융 부담을 낮추기 위해 기획한 12조 원 규모의 펀드 조성도 지연될 가능성이 높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로 선정된 경기 성남시 분당 ‘양지마을’의 한 소유주는 “이주대책 불확실성과 일정 지연에 따른 분담금 상승 등에 대한 주민들의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1기 신도시 선도지구로 선정된 또 다른 단지의 재건축 추진준비위원장도 “정치적 상황이 빨리 정리되지 않으면 예비사업시행자 지정 등 세부 절차 지침이 늦게 나올 수 있어 사업이 지연될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1기 신도시 외 재건축 추진 단지 주민들의 걱정도 커지고 있다. ‘재건축·재개발사업 촉진에 관한 특례법(재건축 특례법)’ 등 정비사업 활성화를 위한 법안 논의가 탄핵 이슈에 발목이 잡혔다. 재건축 특례법은 정비사업 기간을 최장 3년 앞당기고, 한시적으로 용적률을 완화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공급 확대를 위해 재건축 속도를 높여야 한다는 데 여야가 공감대를 형성하며 연내 국회 통과 기대를 모았지만, 극한 대치 상황이 벌어지며 뒷전으로 밀릴 위기에 처했다.
여야 간 이견이 뚜렷한 법안은 통과가 더욱 어려워질 전망이다.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재초환)’ 폐지가 대표적이다. 재초환은 재건축을 통해 얻은 이익이 조합원 1인당 8000만 원을 넘을 경우 초과 금액의 최대 50%를 환수하는 제도다. 정부는 공사비가 급등한 상황에서 재초환이 재건축 의지를 꺾을 것이라며 폐지를 주장하는 반면 야당은 과도한 이익 몰아주기라며 반대하고 있다.
현 정부가 추진 중인 ‘공시가 현실화 로드맵 폐지’도 시계 제로 상태에 빠졌다. 정부는 급격한 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과거 문재인 정부가 공동주택 공시가격을 2030년까지 시세의 90%까지 높이도록 한 공시가격 현실화 로드맵을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위한 연내 법안 통과가 야당의 반대로 불투명해지자 내년에도 2년 연속 2020년 수준으로 동결하기로 한 상태다.
‘기업형 장기 민간임대주택’도 국회에서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리츠와 보험사 등 기업이 20년 이상 장기 운영하는 임대주택으로, 임차인은 전세사기 등 걱정 없이 거주할 수 있는 게 장점이다. 이를 위해 민간임대주택 특별법 개정이 필요하지만 임대료 규제가 완화된 만큼 야당의 협조가 필요하다. 이밖에 생활숙박시설의 합법 사용 지원을 위한 방안과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통합 관리를 위한 시스템 구축 등 산적한 현안도 추진 동력이 떨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부에 따르면 수도권 주택 착공물량은 2022년 19만 7000가구로 전년(28만 4000가구) 대비 약 30% 감소했다. 지난해에는 10만 5000가구에 그쳤다.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2022년 이후 수도권 아파트 착공 감소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그동안 발표된 정책들의 조속한 입법화 및 정책 실행의 시차를 단축해 시장 신뢰를 회복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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