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국정 공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입법 활동도 사실상 마비된 것으로 나타났다. 탄핵 정국이 지속되면서 정부뿐 아니라 여당도 마찬가지인 상황이지만 이를 해소할 마땅한 카드가 없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이달 4일부터 이날 오후 2시까지 정부 입법안을 확인한 결과 상표법 일부 개정 법률안 1건에 불과하다.
이는 12·3 사태가 일어나기 전 상황과 큰 차이를 보인다. 11월과 10월 정부 입법은 각각 25건, 46건을 기록했다. 10월은 국회 국정감사 기간임에도 정부가 적극적인 입법 활동을 했다.
정부와 같은 방향의 정책을 펼 여당의 입법 기능도 크게 약화됐다. 이달 4일부터 10일까지 의원 입법안 약 160건을 분석한 결과 여당 입법은 약 25건으로 16%에 불과했다. 정부와 여당이 협의해 시급하거나 장기적인 대책을 만드는 것은 기대도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우려되는 것은 탄핵 정국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정부의 입법 약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 마땅히 없다는 점이다. 12·3 사태를 수사 중인 경찰은 비상계엄을 심의한 국무회의에 참석했던 국무위원 11명을 수사 선상에 올려놨다. 이번 사태 직후 국무위원 전원이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특히 정부 조직을 관리하고 재난 안전을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장관은 8일 이상민 장관 사퇴로 공백이다.
내년 정부가 계획했던 예산을 쓰지 못하는 상황도 우려를 키운다. 국회는 10일 정부 원안보다 4조 1000억 원을 삭감한 673조 3000억 원으로 내년 정부 예산을 결정했다.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안이 야당 단독 수정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것은 처음이다. 내년 정부·여당이 계획한 방향으로 상당수 정책을 펴지 못한다는 얘기다.
윤석열 정권 내내 국회 여소야대 국면에서 입법의 벽에 부딪혔던 정부는 탄핵 정국에서 쓸 ‘카드’도 없다는 지적이다. 여야의 갈등은 윤 대통령의 탄핵을 두고 최고조다. 의료·연금·노동·교육 등 4대 개혁을 추진했던 부처는 더 허탈한 상황이라는 전언이다. 4대 개혁 중 상대적으로 성과를 냈던 노동 개혁까지 동력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는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이뤄지는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의 대화를 통해 임금제도와 근로시간 개편안을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12·3 사태 이후 노동계(한국노총)는 대화를 중단하고 정권 퇴진을 촉구하기로 했다. 한 중앙 부처 관계자는 “지금 상황에서 새로운 정책(입법)을 어떻게 구상하고 만들 수 있겠는가”라며 “반드시 해야 하고 할 수 있는 업무에만 집중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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