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전기차 배터리 생산 업체인 중국 CATL이 다국적 자동차 제조 업체 스텔란티스와 손잡고 유럽에 대규모 전기차 배터리 공장을 세운다. 저가 물량 공세에 나선 중국이 유럽 내 생산 거점까지 손에 쥐면서 유럽연합(EU)의 자체 배터리 산업 생태계 구축 계획에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10일(현지 시간) CNBC 등에 따르면 이날 CATL과 스텔란티스는 5대5의 지분 투자 방식으로 스페인 북동부 사라고사 지역에 41억 유로(약 6조 1524억 원) 규모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2026년 말 완공될 예정인 이 공장은 스페인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최대 50GWh(기가와트시)의 배터리를 생산하게 된다. 스텔란티스는 이 공장에서 생산되는 배터리로 고품질의 전기승용차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만든다는 계획이다.
존 엘칸 스텔란티스 회장은 성명에서 “CATL과의 합작투자는 이미 청정 및 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는 스텔란티스의 혁신적인 배터리 생산에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다양한 각도에서 지속 가능한 접근 방식을 추진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로빈 쩡 CATL 최고경영자(CEO) 겸 회장도 성명에서 “CATL의 목표는 전 세계에서 탄소 제로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며 더욱 혁신적인 협력 모델을 통해 전 세계 파트너와 협력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CATL은 유럽 내 생산공장 건설은 이번이 세 번째다. 2022년부터 독일 동부 튀링겐주에 전기차 배터리 생산 공장을 가동한 데 이어 내년 완공을 목표로 헝가리 데브레첸에 신규 공장을 건설 중이다. 특히 11월 21일 유럽 최대 전기차 배터리 생산 업체인 스웨덴의 노스볼트가 미국에서 파산보호를 신청한 점도 CATL의 행보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분석된다.
CATL의 유럽 내 신규 공장 건립은 EU가 자체 전기차 배터리 산업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계획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EU는 중국산 배터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자체적으로 배터리 산업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유럽 자동차 제조업체들의 저가 모델 부족과 예상보다 느린 충전소 보급, 미국의 관세 부과 전망 등으로 어려움을 겪어왔다. 반면 중국 업체들의 영향력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SNE리서치에 따르면 올 10월 기준 세계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CATL의 점유율은 전년 대비 0.9%포인트 늘어난 36.8%로 나타났다. 중국 3사(CATL·BYD·CALB)의 점유율을 합치면 58.4%에 달한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제조 업체들은 경쟁사들보다 빠르게 저가형 LFP 배터리로의 전환 등을 채택해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골드만삭스는 세계 전기차 배터리 평균가격이 2023년과 비교해 2026년까지 50% 하락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실제 시장조사 기관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리튬이온 배터리 팩 가격은 지난해보다 20% 이상 하락한 ㎾h(킬로와트시)당 115달러다. 전기차 배터리의 가격 하락은 중국의 기술 개선과 제조 과잉, 생산 단가 절감, 저비용 LFP 배터리로의 지속적인 전환이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독일의 뮌스터대의 배터리연구센터 마르틴 빈터 교수는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산 전기차 배터리와 관련해 “우리는 석유와 가스에 대해 이미 가지고 있는 것과 동일한 의존도를 (중국산) 배터리에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