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생을 외면한 야당의 입법 폭주’라고 지목했던 양곡관리법 개정안이 시행될 위기에 놓였다. 법 시행을 막을 마지막 카드인 대통령의 거부권(재의요구권) 행사가 어려워지면서 양곡법이 효력을 발휘하면 농업 전반에 메가톤급 충격을 줄 것이라는 분석이다.
11일 총리실과 농림축산식품부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양곡법 개정안’은 이달 6일 정부로 이송됐다. 양곡법은 남는 쌀을 정부가 의무적으로 매입하고 양곡 시장가격이 평년 미만으로 하락하면 정부가 차액을 지급하는 ‘양곡가격안정제’ 등을 핵심으로 한다. 해당 제도가 시행되면 2030년 기준 약 1조 4000억 원의 추가 재정이 필요할 것으로 예고됐다.
야당은 양곡법과 함께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 안정에 관한 법 △농어업재해보험법 △농어업재해대책법 개정안도 단독으로 처리했다. 농안법은 농산물 최저 가격을 보장하는 내용이며 농어업재해보험법은 보험료율 산정 시 자연재해 피해 할증 적용을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농어업재해대책법은 재해 이전에 투입한 생산비를 보장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이들 4개 법안에 대해 시장경제를 무시해 농업을 파괴하고 재정 부담을 크게 늘릴 것으로 우려하며 “농망(農忘) 4법”이라고 비판하면서 윤 대통령에게 거부권을 건의한 바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이 사실상 국정 운영에 손을 놓으면서 관련 법안 시행을 막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은 20일까지 행사할 수 있는데 윤 대통령이 국정 운영을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에게 넘겨 직접 거부권을 행사하기가 쉽지 않다. 14일 국회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가결되면 17일 국무회의에서 거부권 행사 건의를 의결, 대통령 권한 대행인 한 총리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는 있다.
다만 민주당이 정국 주도권을 잡은 상황에서 이재명 대표의 1호 민생 법안으로 불리는 양곡법 개정안 등에 한 대행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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