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부의 경기 진단 결과 우리 경제 상황이 더 악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획재정부는 13일 ‘최근 경제동향(그린북)’에서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로 가계·기업 경제심리 위축 등 하방 위험 증가 우려가 있다”면서 ‘경기 회복세’ 표현을 14개월 만에 삭제했다. 정치 불안이 초래할 소비·투자 위축 우려에 종전의 낙관적 진단을 거둬들인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2일 한국경영자총협회장 등 경제단체장들과 ‘민생 현안 긴급 간담회’를 갖고 “경제가 정치적 불안정성 때문에 더 큰 피해를 보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이 대표는 전날 민주당 단독으로 출범시킨 여야정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도 “여야정이 힘을 합쳐 위기를 잘 넘어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거대 야당 대표가 경제 위기를 막기 위해 협력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다만 이 대표의 ‘경제 살리기’ 언급이 조기 대선을 의식한 빈말에 그쳐서는 안 된다. 이 대표는 말로는 ‘먹사니즘(국민의 먹고사는 문제 해결)’을 외치면서도 정부 예산을 총 4조 1000억 원 감액한 예산안을 일방적으로 통과시키는가 하면 기업 활동과 경제를 위축시키는 반(反)시장 법안들을 밀어붙이고 있다. 국회가 기업에 기밀 자료를 요구하고 재계 총수도 언제든 불러낼 수 있도록 한 국회증언·감정법 개정안과 양곡관리법 개정안 등 ‘농업 4법’을 지난달 28일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또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주주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을 경제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강행 처리할 태세다. 반면 반도체특별법·국가전력망확충특별법 등 시급한 경제 살리기 법안들은 뒷전으로 미루고 있다.
경제와 민생을 살리려면 진정성 없는 백 마디 말보다 실천이 중요하다. 이 대표의 경제 행보가 말뿐인 정략에 그치지 않게 하려면 거대 야당은 반시장·반기업 입법 폭주를 즉각 중단하고 여당과 협력해 경제 활성화 법안들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 정부와 정치권은 이 대표가 제안한 ‘여야정 비상경제협의체’를 조속히 가동해 정치 불안이 경제 위기로 전이되지 않도록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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