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2022년 3월 ‘공정과 상식 회복’이란 국민적 열망을 등에 업고 제20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정권 초기부터 반복된 ‘수직적 당정 관계’ ‘김건희 여사 감싸기’ 등 독단적 국정운영으로 국민적 지지를 잃었고 ‘12·3 비상계엄’ 사태로 돌아올 수 없는 민심을 강을 건넜다. 헌법재판소가 윤 대통령의 탄핵소추안 인용을 결정할 경우 윤 대통령은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퇴진한 역사상 두 번째 대통령이 된다.
검사 출신인 윤 대통령이 정치 입문 8개월 만에 대통령에 당선된 건 한편의 정치 드라마였다. 윤 대통령은 2013년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명언으로 국민들에게 ‘강골 검사’ 이미지를 국민들에 각인시켰다.
당시 국정원 댓글수사 팀장이었던 윤 대통령이 직속 상관인 서울중앙지검장·법무장관의 외압을 겨냥한 것으로, ‘권력에 굴종하지 않고 오직 법과 원칙만 따른다’는 윤 대통령 서사의 시발점이 됐다. 이후 윤 대통령은 한직을 떠돌았으나 2016년 박근혜 국정농단 사건 특검의 수사팀장을 맡으며 중앙으로 복귀했다.
윤 대통령은 본인을 요직에 등용한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칼 끝을 들이밀며 드라마를 완성했다. 윤 대통령은 문재인 정권에서 서울중앙지검장, 검찰총장에 기용됐으나 조국 법무장관 일가 비리 의혹 수사,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 등 살아있는 권력에 대한 수사를 서슴치 않으며 ‘반문(反文)’ 구심점으로 떠올랐다. 추미애 당시 법무부 장관은 검찰 수사, 인선 등의 문제에서 윤 대통령을 배제하려 했지만 집권 세력이 억압하려 할수록 윤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는 확장됐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이러한 강골 면모는 취임한 이후에는 되레 독이 됐다. 남의 말을 따르지 않고 본인의 뜻을 밀고 나가는 강한 기질이 윤 대통령의 통치 스타일에 의구심을 드리운 것이다. ‘청와대의 용산 이전’을 시작으로 윤 대통령의 일방통행식 국정운영에 대한 우려가 제기됐으나 윤 대통령은 ‘독선’이라는 지적을 수용하지 않고 정치적 이해를 계산하지 않는 결단, 정책의 정당성 만을 강조했다. 특히 올해 ‘의대 2000명 증원’ 등으로 4·10 총선에서 참패하고도 윤 대통령은 ‘국정운영 기조에 문제는 없다’는 인식을 공개적으로 표명해 왔다.
야당은 물론 여당을 국정운영의 파트너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는 점도 민심 이탈을 가속화한 요인이 됐다. 국회 의석을 192석을 가진 야권의 협조 없이는 법률안, 예산안 처리가 어려운 실정이나 윤 대통령은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할 뿐 대화에 소극적 모습을 취하며 ‘대결 정치’를 고조시켰다. 윤 대통령의 강한 리더십에 여당은 존재감을 상실했다. 2022년 7월 ‘이준석 축출 사건’을 시작으로 ‘수직적 당정관계을 극복해야 한다’는 여권 내부의 자성의 목소리가 들끓었지만 이후에도 대통령실이 당무에 노골적으로 개입하는 모습을 이어가며 국민의힘은 ‘용산 2중대’로 전락했다.
특히 김건희 여사와 관련한 사안에 있어서 국민적 눈높이와 동떨어진 대응으로 민심의 둑을 터뜨렸다. 지난해 말 김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이 커진 후 여권에선 김 여사의 직접 사과, 재발 방지책 수립 등 사태 해결책 건의가 쏟아졌지만 윤 대통령은 이런 제안에 선 그으며 수용을 거부했다. 윤 대통령의 ‘김건희 감싸기’는 단순한 정치적 비아냥을 넘어서 ‘공정과 상식’을 바랬던 민심을 배반하며 정치적 위기를 키웠다.
이런 요인들이 뒤섞이며 지지율이 10%대까지 추락한 상황에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비상계엄 선포로 탄핵의 강을 건너게 됐다. 국가적 비상사태 없이 선포된 계엄령에 국민 대다수가 황당해하며 위헌성을 규탄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통치행위”로 규정하며 정당성을 항변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 더구나 ‘더불어민주당의 폭거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계엄을 선포했다’는 황당한 현실 인식은 윤 대통령에게 더 이상 국정을 맡길 수 없다는 국민적 불안을 키웠다.
14일 국회의 탄핵소추안 가결로 윤 대통령은 취임 949일 만에 ‘식물 대통령’ 상태가 됐다. 앞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올때까지 칩거 생활을 이어갔으나 윤 대통령은 직접 여론전에 등판해 정치적 긴장감을 키울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2일 윤 대통령은 “야당은 비상계엄 선포가 내란죄에 해당한다며 광란의 칼춤을 추고 있다” “마지막 순간까지 국민 여러분과 함께 싸우겠다” 등 정제되지 않은 언어를 사용해 흥분된 감정상태를 숨기지 않았다. 윤 대통령은 또한 지지층 결집을 위해 ‘부정 선거론’을 집중적으로 띄울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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