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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시대 앞두고 韓외교 실종…내년 APEC도 발등의 불[尹대통령 탄핵가결]

트럼프 대응 골든타임 놓쳐

美는 권한대행 상대안할 것

보편관세, 반도체법 등 후폭풍

日과의 국교 60주년 사업 차질

시진핑 APEC 초대 물거품되나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5일(현지시간) 페루 리마의 한 호텔에서 열린 한중 정상회담에 앞서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과 악수하고 있다./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4일 국회에서 가결되며 대한민국은 상당 기간 ‘외교의 부재’ 시대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글로벌 안보 및 무역 지형이 요동치는 가운데 이에 대응할 ‘골든 타임’을 놓쳐 국가적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실을 입을 것이란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년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 줄줄이 예고된 국제 행사 준비에도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다만 탄핵 가결로 인해 군통수권 등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은 북한에 대한 한미 간의 안보 대응 측면에서 최소한 안심할 대목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이날 뉴욕타임즈(NYT)와 워싱턴포스트(WP), BBC, CNN 등 주요 외신들은 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소식을 긴급 타전하며 “한국은 장시간의 불확실성에 돌입했다”고 진단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가 시작된다고 하지만 권한대행과 주요 외교 정책을 논의할 해외 정상은 없다는 점에서 향후 대한민국의 외교 행보는 소극적인 현상 유지와 위기관리에 그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지적이다.



BBC는 “윤 대통령은 한국을 ‘세계의 중심 국가’로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있었으나 이번 사태로 인해 한국의 국제적 신뢰도는 추락했고, 윤 대통령이 이루려 했던 많은 것들도 훼손됐다”면서 “그가 일으킨 충격파는 앞으로 수년, 아마도 수십 년 동안 파장을 일으킬 것”이라고 진단했다. WP도 “주한미군 방위비 등에 불만이 높은 트럼프 정부 출범에 맞물려 발생한 한국의 정치적 마비 상황은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는 한미 동맹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면서 “미국과의 외교에서 한국을 취약한 입장에 놓이게 하고, 외교·무역 정책에 신속히 대응하는 능력도 손상시킬 수 있다”고 짚었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발 빠른 정상외교를 통해 트럼프 2기발 충격을 최소화하기도 모자랄 시간에 우리가 대미 외교 협상력을 잃는다는 점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권한대행 체제를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을 것이 분명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선 후에야 한미 간 협상을 시작할 가능성이 크다. 한 외교소식통은 “한국의 정권 교체 향방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외교 관료 집단 만으로는 트럼프 측과의 네트워크 구축과 정책 대응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며 “범 정치권 차원에서의 지원이 필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트럼프는 자신의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외교 구상을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트럼프는 이미 우크라이나 종전 추진 과정에서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톱다운’ 협상 가능성을 내비쳤으며, 사실상 같은 경제권으로 불리던 캐나다, 멕시코 등을 상대로 전방위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또 조 바이든 행정부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와 반도체법 등을 전면 수술할 방침으로, 이를 믿고 대미 투자에 나선 한국 반도체·배터리 기업들의 막대한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연합뉴스


미 전문가들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가 올해 사상 최대치를 기록한 상황에서 한국이 트럼프 2기의 주요 타켓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앞서 트럼프의 보편 관세 공약과 한국의 대미무역 흑자를 언급하면서 “이러한 조합은 거의 확실히 10% 이상의 한국에 대한 관세(부과)를 의미한다”며 “한국이 리더십을 회복하기 전에 분명히 관세가 부과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그래서 (전 세계) 모두가 마러라고나 백악관에 가서 개별 협상을 시도하는데 한국에는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미국 내에서는 탄핵 정국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국정 주도권 장악으로 이어지면서 그간의 한미 동맹 및 한미일 공조 강화 기조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WP는 “미국에 덜 의존하려 하고, 일본과의 관계 개선에 소극적인 야당 지도자의 부각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최대 외교 성과를 흐리게 할 것”이라고 전했다. 시드 사일러 전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 북한 담당관도 “야당이 새로 정권을 잡을 경우 한미일 협력이 어려워질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새 정부가 북미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시도할 수 있다”면서 “(이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암시하는 불안한 징조”라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해 워싱턴DC 인근 미국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 공동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대통령실


윤석열 정부 들어 관계를 회복한 일본과의 내년 국교정상화 60주년 사업 역시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각 부처를 비롯해 다양한 영역에서 협력 사업이 전개돼야 하지만 주요 장관 자리가 공석이거나 다수는 계엄 관련 수사 대상에 올라 운신의 폭이 좁다. 무엇보다 한일 관계 개선의 주역인 윤 대통령이 빠진 상태에서 한일 양국간의 외교가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긴 어렵다. 일본 역시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입지가 탄탄하지 못해 한일 간 리더십을 바탕으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기 어려운 여건이다.

서서히 회복되던 중국과의 관계 마저 윤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를 통해 중국 스파이와 중국산 태양광을 지적하며 차갑게 냉각됐다. 마오닝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 측의 발언에 대해 깊은 놀라움과 불만을 표한다”며 “중한 관계의 건강하고 안정적인 발전에 이롭지 않다”고 꼬집었다. 한·중 양국은 내년 경주에서 열리는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과 정상회담을 치를 계획이었는데 이마저 불투명해졌다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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