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 상황에서도 인공지능(AI)기본법이 국회를 통과해야 정보통신 강국으로서 대외 신인도를 지킬 수 있습니다.”
손승현 한국정보통신기술협회(TTA) 회장은 최근 경기 성남시에 위치한 협회 사옥에서 진행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연내 AI기본법이 국회를 통과, 시행돼야 불확실한 정치 상황에서도 AI 산업 진흥과 규제를 선도하겠다는 의지를 뚜렷하게 보여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혼란스러운 정국 상황으로 인해 AI기본법의 국회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형편이다. 손 회장은 “AI기본법은 불확실한 환경에서 최소한의 사업과 시장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는 의미가 있다”며 “이해관계자들과 논의를 거쳐 여야 합의로 상임위원회를 통과한 만큼 연내 처리돼 시행에 들어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TTA가 이처럼 AI기본법 통과를 희망하는 데는 달라진 역할도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통신·단말 기술 표준 인증에 무게를 뒀던 TTA는 AI 확산에 따라 전 산업 분야에 정보통신 표준과 시험·인증 필요성이 커지면서 산업 전반으로 역할이 확대되고 있다. 일례로 식품의약품안전처와의 협력이 대표적이다. 손 회장은 “TTA와 식약처 간 협업에서 할 일이 있을까 싶지만 의료기기의 소프트웨어 비중이 증가하면서 품질 인증이 필요해졌다”며 “AI와 네트워크 연결 등 디지털 특성에 기반한 의료 제품의 표준을 세우고 안전성과 유효성 평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TTA는 디지털 전환(DX)과 AI 전환(AX) 시대에 맞춰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함께 민간 자율 AI 신뢰성 인증을 국내 처음으로 부여하는가 하면 양자 테스트베드도 구축하고 있다. 의료기기와 자동차 등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하는 한편 표준·인증과 관련한 국제단체와의 협력도 강화한다. 당장 내년 3월 개최되는 이동통신표준화기구(3GPP) 워크숍을 인천에 유치한 것도 국제 협력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손 회장은 “인천에서 3GPP가 열리는 것 자체가 세계 최초로 한국이 5세대(5G) 이동통신을 도입하고 이후 6세대(6G)에 대한 기술력에서도 주요 국가들이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6G에 대한 실질적인 표준화 논의의 장을 한국에서 시작해 6G 표준 주도권을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6G는 이동통신 기술 표준 개발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롱텀에볼루션(LTE)에서 5G 등은 속도를 더하는 기술의 발전으로 이해한다면 6G는 지상과 공중의 이동통신 결합 시대를 열게 된다는 얘기다. 손 회장은 “자율주행·드론 등이 모두 포함되기 때문에 3GPP는 6G 글로벌 리더십과 주도권을 확보하려는 국가들의 경쟁이 심화할 것”이라며 “TTA도 주도권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민관 협력으로 제안한 6G 청사진을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이 발표한 6G 비전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TTA의 기본 업무는 ‘표준’을 세우는 일이다. 손 회장은 “특허가 있다고 기술 사업화에 성공할 수 없고 기술·요건·품질·규격 등이 정해져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면서 “표준화에 맞춰 제품이 만들어지고 기업 간의 경쟁이 생기면서 그걸 또 기반으로 다른 서비스가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표준에 맞춰 시험 인증도 역시 중요한 업무다. 손 회장은 “표준화에 이어 객관적으로 인증을 하는 일도 기업들에는 중요한 지원 수단이 될 수 있다”며 “자율주행과 무선 전력 충전, 양자, 지능형 홈네트워크 등 융복합 표준과 인증에 집중하는 것은 새로운 시장이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는데 우리 기업들의 적응이 늦어지면 안 되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손 회장은 현재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전자정부 구축에 일조했다. 정부 신문고 시스템을 만들었고 현재의 ‘정부24’ 같은 대국민전자정부서비스를 구축하는 데 주요 역할을 맡았던 그는 TTA 수장이 된 뒤에도 정보통신기술이 특정 분야에 한정되지 않고 국민 편의성을 높이는 데 집중하고 있다. 손 회장은 “TTA는 단순 표준 제정 보급, 시험 인증에 그치지 않고 기업과 연구자들의 실질적인 의견을 반영해 시장을 확보하고 진출할 수 있는 지원책을 계속 찾아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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