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달 바뀌는 레지던트 분들이 하시는 것보다 전문간호사 분들이 하시는 게 좋습니다. 할 때마다 공포가 어마어마합니다. "
"ㅇㅇ대병원에는 '골수검사의 신'이라고 불리는 간호사 선생님이 계십니다. 도리어 경험이 부족한 의사들이 하다 고통스러워서 악 지르고 힘들어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합법적으로 간호사 선생님들도 (골수검사를) 하실 수 있도록 해주세요. "
골수 검체 채취를 위해 골막 천자를 수행한 전문간호사가 무죄라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오면서 의료계의 반발이 거센 가운데 실제 검사를 받는 환자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17일 한국백혈병환우회가 공개한 골수검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의사로부터 지도 감독을 받은 전문간호사가 골수검사를 시행하는 데 대해 반대하는 백혈병 환자는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골수검사를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의료행위라고 생각한 환자는 10명 중 6명이었다. 환우회가 올해 10월 24일부터 31일까지 8일 동안 회원 중 골수검사 경험이 있는 백혈병·혈액암 환자를 대상으로 시행한 조사 결과다. 이번 설문에는 급성골수성백혈병(161명), 급성림프구성백혈병(88명), 만성골수성백혈병(48명), 만성림프구성백혈병(17명), 골수형성이상증후군(17명) 등 골수검사를 요하는 다양한 혈액질환 환자 총 355명이 참여했다.
설문에서 언급된 골수검사는 혈액 또는 종양성 질환의 진단과 치료경 과를 확인하기 위해 골수가 들어 있는 골반 뼈를 굵고 긴 바늘로 찔러 골수 조직을 채취하는 침습적인 검사다. 골막천자 또는 골수채취라고도 불린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355명 중 1명을 제외한 354명(99.7%)은 골수검사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환우회에 따르면 ‘골수검사를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절대적 의료행위라고 생각하는지, 의사가 지도·감독하면 전문간호사도 할 수 있는 진료보조행위라고 생각하는지' 묻는 문항에서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절대적 의료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환자는 354명 중 214명(60.5%)이었다. ‘의사가 지도·감독하면 전문간호사도 할 수 있는 진료보조행위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한 환자는 120명(33.9%)이었고, ‘잘 모르겠다’고 답변한 환자는 20명(5.6%)으로 집계됐다.
또 ‘골수검사 관련 교육과 수련을 받고, 의사의 지도·감독을 받으면 전문간호사도 골수검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에 찬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반대한다’고 답변한 환자는 354명 중 175명(49.4%)이었다. ‘찬성한다’고 답변한 환자는 139명(39.3%)이었고, ‘잘 모르겠다’고 답변한 환자는 40명(11.3%)으로 조사됐다.
대부분의 국내 병원에서는 부작용이나 합병증 발생 등의 우려로 인해 의사가 직접 골수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의사가 전문간호사에게 골수검사를 하도록 지시하고 전문간호사가 골수검사를 직접 시행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다. 이 같은 논란은 대한병원의사협의회(병의협)가 지난 2018년 서울아산병원을 고발한 게 시발점이다. 서울아산병원 혈액내과, 종양내과, 소아종양혈액내과의 경우 이례적으로 2018년 4월부터 11월까지 의사가 전문간호사에게 골수검사를 하도록 지시했고, 전문간호사가 골수검사를 직접 시행했다. 이에 대해 검찰이 기소해 형사재판이 진행됐는데 그간 사법부의 판단은 수 차례 뒤집혔다. 1심 혐사법원은 "골수검사는 의사가 전문간호사에게 지시하거나 위임하는 것이 불법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서울아산병원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에 반해 2심 형사법원은 "의사가 현장에서 지도·감독하더라도 전문간호사가 골수검사를 직접 한 이상 진료보조가 아닌 진료행위로 봐야 한다"며 1심 판결을 뒤집고 서울아산병원에 유죄를 선고했다. 그런데 2심 재판부의 판단을 또다시 뒤집은 대법원의 판결이 최근에 나온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환자의 생명과 건강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침습적 의료행위이므로 환자 안전을 위해 마땅히 면허된 의사만이 수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해 왔다. 진료지원(PA) 간호사를 합법화하는 내용이 담긴 간호법 제정안이 지난 8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내년 6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는 것도 민감한 요소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16일 전문간호사 자격 취득과 교육 기회를 확대하겠다며 '전문간호사의 자격 인정 등에 관한 규칙' 일부 개정령을 공포하고 즉시 시행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 조사를 기획 및 시행한 환우회도 결과가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다. 안기종 한국백혈병환우회 공동대표는 “백혈병, 혈액암 등 중증질환은 의료의 질과 환자 안전을 중시하고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한 절대적 신뢰가 강한 경향이 있다"며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인한 의료공백이 장기화한 데 따른 변화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백혈병 환자들이 전공의 없이 전문의와 PA 간호사가 골수검사 같은 침습적 검사 행위를 하는 상황을 빈번하게 경험하다 보니 '의사만이 할 수 있는 절대적 의료행위'라는 인식이 옅어진 것 아니겠냐는 해석이다.
환우회에 따르면 골수검사를 받은 경험이 있었던 354명 중 '(골수검사를) 한 번 만에 성공했다'는 답변은 219명(61.9%)이었고, 여러 번 받았다는 답변은 135명(38.1%)이었다. 골수검사를 받은 백혈병·혈액암 환자 10명 중 4명은 한번 만에 성공하지 못해 여러 번 찔리면서 고통과 불편을 겪었음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다. 골수검사를 한 번에 성공하지 못해 여러 번 받았다고 답변한 135명 대상으로 다른 의료인으로 교체된 경험이 있는지를 물었을 때 '(의료인을) 교체한 경험이 있다'는 답변은 68명(50.4%), 교체하지 않고 동일한 의료인이 했다는 답변은 67명(49.6%)으로 조사됐다. 또 1회 실패 후 교체된 경우는 30명(44.1%), 2회 실패 후 23명(33.8%), 3회 실패 후 8명(11.8%), 4~5회 실패 후라고 답변한 사람은 7명(10.3%)이었다. 골수검사는 통증이 심하고 안전사고의 우려가 있는 침습적 검사 행위인 데도 검사 실패 시 숙련된 레지던트나 전문의로 바로 교체하지 않고 여러 번 실패하고 나서야 교체되는 등 환자의 진료 권리가 심각하게 침해받고 있다는 게 환우회의 지적이다.
이들은 2014년 혈액암이 의심되는 9살 어린이의 요추천자 시술을 1년차 레지던트 2명이 번갈아 가며 시행하다가 5회 실패한 후 사망한 사건 등을 언급하며 "골수천자 같은 침습적 검사행위는 환자 안전사고 발생 위험이 크다"며 "숙련도가 부족한 전공의의 수련 과정에서 환자가 고통과 피해를 입지 않도록 병원 차원에서 환자의 안전과 인권을 보장하는 가이드라인과 메뉴얼을 만들어 운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전공의 수련병원 지정 요건에 이러한 내용이 포함되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