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102명이던 자동포장기계 제조업체 A사는 2014년 임금체계 개편을 결정했다. 너무 많은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되는지 불투명해 노사 다툼 소지가 컸기 때문이다. 승진도 임의적으로 이뤄져 직원의 생산성 향상과 동기부여가 어려웠다.
A사는 우선 관리·연구개발직은 성과연봉제를, 생산직에는 호봉급을 유지했다. 대신 자동 승급을 폐지하고 성과 평가에 따라 차등 승급제를 뒀다. 특히 A사는 여러 수당을 직무수당과 법정수당으로 단순화했다. 기본급에 직무특성을 반영해 직군별 기본급체계로 바꿨다. 이 과정에서 기본급 비중이 증가했다. 더 잘하는 팀과 직원에 성과가 더 돌아가도록 했다. 예를 들어 기술영업팀은 기존 상여금 외 추가 인센트비를 도입했다. 당해 수주목표금액 85%를 달성하면, 연 기본급의 300%를 주는 방식이다. 그 결과 A사는 이직률이 10%에서 2%로 줄었다. 인력은 102명에서 128명으로 증가했다.
19일 대법원이 통상임금 범위를 넓히는 판결을 하면서 노사가 비상 상황에 놓였다. 이 변화는 임금을 더 줘야 하는 사측의 어려움만이 아니다. 기업의 이익을 높아야 늘어난 임금을 제대로 받는 근로자도 이 변화 대응을 위해 사측과 머리를 맞대야 한다.
2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는 2016년 A사를 비롯해 임금체계 개편 성공사례 등을 담긴 가이드북을 발표했다. 임금 개편에 성공한 기업들의 공통점은 연공에 따라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 비중을 낮추고 직무급, 직능급 등 대안적 임금체계를 도입했다는 점이다.
특히 연공급은 196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빠르게 확산됐다. 해외와 다른 점은 인사 평가에 의한 차등인상 보다 일률적인 인상이 더 많다는 점이다. 2021년 기준 근로자 100인 이상 사업체 약 55%는 호봉제를 활용 중이다. 문제는 연공성이 강한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유인이 높다는 점이다. 다른 임금체계에 비해 비용 부담이 커 투자나 인재 확보의 어려움이 될 수 있다. 성과에 맞게 보상을 원하는 청년 세대의 직업관과도 배치된다.
가이드북은 임금체계 개편을 6단계로 제안했다. 진단→여건 분석→임금체계 개편 방식 결정→개편 준비→노사 협의→시행·점검이다. 세부 절차로 호봉제의 대안인 직무급을 도입하려면 기존 직무에 대한 재분류가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직무기술서가 필수다. 이를 통해 평가와 성과 체계가 만들어진다.
임금 체계를 개편할 때 법적 쟁점 검토도 필수다. 임금체계 개편은 늘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의 경계선에 있다. 개편 전후 임금수준을 분석해 임금이 저하되는 근로자가 없도록 해야 한다. 통상임금은 19일 대법원 판단으로 적용가능한 수당이 훨씬 늘어날 전망이다. 기존에는 정기성과 일률성, 고정성을 충족해야 통상임금에 해당했지만, 앞으로는 정기성과 일률성만 부합하면 인정되기 때문이다. 또 상당수 중소기업은 지급 능력을 고려해 재직자 요건을 상여금에 넣는 방식으로 통상임금을 낮췄다. 대법 판단으로 이런 방식의 ‘회피’도 불가능해졌다. 19일 대법 통상임금 사건을 맡았던 김기덕 변호사는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 등 법정수당과 이에 따른 퇴직금 등 노동자의 임금 권리가 확대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가이드는 “임금은 수준에만 매몰되면 노사 대립 관계, 신규 채용 감소, 외주나 하도급 증가 등을 만든다”며 “임금체계 관점으로 보면, 임금은 기업의 중요한 인적자원을 가장 효과적으로 활용하는 수단이다, 인적자원 특성을 잘 고려해 인사·조직관리를 해야 기업 성과가 높아진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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