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해 나라를 구했던 우리 국민들에 대한 헌사다.”
최근 언론 시사회를 통해 베일은 벗은 영화 ‘하얼빈’에 대한 평가이자 우민호 감독의 연출 의도다.
모두 300억 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되고 라트비아, 몽골 등 현지 로케이션 촬영이 만들어낸 압도적인 스펙터클에 현빈(안중근), 박정민(우덕순), 조우진(김상현), 박훈(모리 다쓰오), 유재명(최재형), 전여빈(공부인), 릴리 프랭키(이토 히로부미) 등 화려한 캐스팅의 대작이다.
영화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이른바 ‘늙은 늑대’) 암살 작전을 실행하기까지 7일 간의 과정을 다뤘다. 역사가 스포일러일만큼 누구나 알고 있는 내용이다.
영화 ‘하얼빈’이 1909년 10월 26일 ‘늙은 늑대’ 저격을 앞둔 7일 간의 과정을 그리면서 가장 초점이 맞춰진 부분은 ‘인간’ 안중근의 고뇌다. 일본군 포로에 “가족이 있냐”고 묻고, “아내와 아들이 있다”고 답하자 “좋은 아버지가 돼라”며 다른 독립군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풀어주고, 얼마나 더 죽어야 나라를 찾을 수 있는 것인지를 스스로에게 물으며 고통스러워하는 안중근의 모습이 깊은 인상과 울림을 남긴다.
안중근 역을 맡은 현빈은 캐스팅을 수차례 거절했다고 한다. 현빈은 “안중근의 상징성과 무게를 감당할 수 없었다”며 “그런데 시나리오를 받고 이런 좋은 인물을 연기할 수 있는 배우가 몇이나 될까라는 생각에 마음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오랫동안 안중근을 연기한 ‘정성화의 안중근’과는 결이 다르도록 했다”며 “인간관계에서 오는 고뇌, 괴로움, 고통, 즐거움 등에 집중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그가 연기한 안중근은 쓸쓸하고 외롭고 고통스러워하지만 끝내 의연하다. 우민호 감독은 “현빈 씨의 눈빛에는 쓸쓸함이 있다. 연악함도 있다. 그렇지만 강하다"며 “안중근의 두려움 쓸쓸함, 끝까지 걸어가는 그런 모습, 눈빛이 현빈 씨에게 있다고 생각해서 수차례 ‘러브콜’을 보냈다”고 설명했다.
‘늙은 늑대 암살 작전’ 실행까지 7일 간의 과정도 그동안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연출됐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속도감과 스릴이 아닌 묵직함을 택했기 때문이다. ‘도파민 연출’은 ‘남산의 부장들’ ‘내부자들’을 연출한 우 감독의 특기이지만 이번에는 철저하게 배제했다. 그가 가장 잘 하고 대중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기술’을 부리지 않은 이유는 바로 그가 그리고자 했던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아니기 때문이다. 존경심을 담아 숭고하게 표현하고 싶었기에 영화는 묵직하고 장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 감독은 “이전 작품들에서는 악인을 다루고 현대사를 비판했다”며 “처음으로 이 나라를 위해 조국을 위해 헌신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20대 30대 젊은 분들이 나라를 위해 헌신할 수 있었던 힘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많은 자료를 찾아 보는 동안 죄스러웠다”고 말하며 울먹였다. 그는 이어 “그들을 존경하고 숭고하게 그리고 싶었다”며 “지금 혼란의 시대를 관통하고 있는데 반드시 그 때처럼 이겨낼 것이라고 믿고 관객들이 자긍심을 느끼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안중근은 작전 수행 단계마다 이름 없이 죽어간 동지들을 떠올리며 고통스러워하고, 쓸쓸해 하고 무너질 듯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다. 안중근처럼 또 다른 독립군 동지들처럼 우리 국민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
특히 요원 중 밀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돼 동지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안중근의 눈빛과 카메라의 시선은 ‘누구도 의심스럽지 않게’ 응시한다. 이는 나라를 잃은 민족을 바라보는 감독과 관객의 애틋한 시선일 것이다. 동지들을 믿으면서도 의심하는 등 혼돈스러운 상태에서 마침내 밀정의 정체를 알아 차릴 때 안중근의 눈빛 연기는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이자 ‘현빈의 인생 컷’이라고 할 수 있다. 왼쪽 눈에 비쳐 떨어지지 않는 눈물은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이외에도 ‘현빈의 화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현빈은 모든 장면에서 영화였고 ‘명작’이었다.
아이맥스 등 커다란 화면으로 봐야 제대로 음미할 수 있는 영상미도 압권이다. 만주와 지형이 유사한 몽골과 함께 옛 러시아의 건축양식이 남아 있는 유럽 발트해 인근 라트비아에서 촬영된 치열한 독립운동 현장이 화면을 채울 때마다 가슴이 저며 오는 고통을 관객들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제작비가 그대로 느껴지는 스케일은 물론 독립운동가 한 명 한 명에 대한 존경심을 담은 미장센은 슬프고도 숭고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영화는 현 시국에서 되새겨 볼만한 대사들이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조선이란 나라는 수백 년간 어리석은 왕과 부패한 유생들이 지배해 온 나라지만, 저 나라 백성들이 제일 골칫거리다. 받은 것도 없으면서 국난이 있을 때마다 이상한 힘을 발휘한다” (이토 히로부미(릴리 프랭키))
“어둠은 짙어 오고 바람은 더욱 세차게 불어올 것이다. 불을 밝혀야 한다. 사람들이 모일 것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우리는 불을 들고 함께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한다. 불을 들고 어둠 속을 걸어갈 것이다.”(안중근(현빈))
우 감독은 “저도 깜짝 놀랐다. 제가 알고 쓴 것도 아니지 않냐"며 "시국과 맞닿으면서 그런 지점으로 읽히니까 그것 또한 이 영화의 숙명이지 않을까 싶다. 영화 스스로의 어떤 생명성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그날 밤은 한국 사람이라면 안 놀랄 사람이 없었을 거다. 그 당시 전 촬영 중이었다”며 "가짜뉴스 아닌가 했는데 진짜라니 참담했다. 우리가 만든 견고하다고 한 자유 민주주의가 하루 만에 무너질 수 있구나. 새삼 느꼈다"고 덧붙였다.
배우들도 시국이 시국인 데다 영화의 메시지와 대사 등이 의미심장한 까닭에 소신 발언을 전했다. 극 중 유일한 여성인 공부인 역의 전여빈은 "광복은 빛을 되찾는다는 의미"라며 "'하얼빈'의 독립투사들도 한마음 한뜻으로 한걸음씩 나아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혼란의 시기를 겪고 있을 국민과 함께 더 나은 내일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 영화도 큰 뜻을 품고 더 나은 민주주의를 위해 나아가는 데 힘을 보탰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강조했다.
박훈은 “영화를 보시고 의지하시고 힘이 되신다면 감사할 일”이라며 “저는 사실 오프닝 장면 예고에도 많이 나왔지만 언제 깨질지 모르는 발걸음을 한걸음 한걸음 내딛는 것도 힘든 여러분들께 또 다시 한 걸음 내디딜 수 있는 힘을 주는 작품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우진은 “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사람들의 여정”이라며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 각오를 달리하고, 행동에 옮기는 분들이 많다. 간절한 기도 같은 영화이길 바란다”고 말했다.
현빈은 “영화에서 안중근 장군 함께 했던 동지들이 어떤 힘든 역경이 와도 신념을 가지고 나아갔더니 결국 좋은 결과를 만들었듯 지금 또한 힘을 모아 한발 한발 내디디면 더 나은 미래가 있을 거라고 믿는다”며 “해외 포스터에 ‘지금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간다’는 문구가 있다. 이 문구처럼 저희에게 의미가 있고 많은 분들이 희망과 용기를 얻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유재명은 “100여년 전에 역사적 사실을 영화화했는데, 현실에 존재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 심장이 뛰고 울분이 나고 눈물 났다”며 “지금의 나와 그분들은 시간이라는 진리로 연결됐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우리의 다음 세대도 우리와 연결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금 우리를 돌아보고 그분들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밝혔다.
영화는 300억 원이 투입된 대작이다. 코로나로 극장 관람 문화가 크게 변화했고 영화가 OTT와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대작 영화, 긴 호흡의 영화의 생존은 더욱 절박한 상황이 됐다. 여기에 최근에는 OTT 시리즈보다 짧은 ‘숏폼’까지 가세해 콘텐츠 시장은 점점 격변하고 있다. 영화의 손익분기점은 650만 명 가량이다. 진정성과 극장에서 꼭 봐야 할 영상미로 무장한 이 영화가 관객들을 얼마나 움직이게 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우 감독은 “안중근과 독립운동가들의 여정을 숭고하게 마음과 정신을 숭고하고 담고 싶었다”며 “그래서 힘들지만 로케이션 장소를 찾아 다녔고 그분들이 하얼빈으로 가는 여정을 리스펙트풀하게 클래식하게 찍고 싶었다”며 “한국 영화 쉽지 않은데 OTT와는 다르게 차별성을 가질 수 있는 게 뭔지 배우, 스태프들과 고민하면서 진심을 담아 찍었다”고 강조했다. 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