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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가 어때서…[임채운 교수의 경제를 보는 눈]

■임채운 서강대 경영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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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매우 중요하다. 우리는 어떤 사람을 처음 만날 때 가장 먼저 나이부터 재본다. 나이순에 따라 연배와 연장자가 정해지기 때문이다. 장유유서라는 오랜 유교적 전통의 잔재다.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시대는 오래 살아 나이가 많으면 지혜가 쌓인다고 존경을 받던 세상이었다. 50에 지천명(知天命)이요 60에 이순(耳順)이라는 공자의 말씀이 나이가 들며 성숙하고 현명해져 가는 인생의 단계를 묘사한다.

그런데 현대 기업의 세계에서는 전혀 다르다. 기업의 인사관리에서도 나이를 따진다. 다만 나이가 많으면 대접을 받는 게 아니라 홀대를 받는다. 생물학적 나이와 회사 기여도는 반비례의 관계로 여겨진다.

우리나라의 임금 형태는 연공서열형 호봉제로 근속 연수를 기준으로 임금이 결정된다. 오래 근무하면 자동으로 임금이 인상된다. 나이든 직원을 우대하는 임금제도로 도입됐다. 그런데 이 호봉제 때문에 나이든 직원이 기업의 부담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임금이 인상된 만큼 생산성이 올라가지 않고 새로운 기술이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걸림돌로 치부된다.

정보기술(IT) 기업에서 이런 현상이 극명하게 나타난다. 네이버, 카카오, 삼성SDS, LG CNS에서 50대 팀장급 관리자가 늘어나며 공무원 조직처럼 관료화됐다고 한다. 20~30대 직원들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 할 때 이를 이해하지 못하는 50대 관리자가 소극적인 입장을 취해 기술적 선도기회를 놓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나이든 직원을 직장에서 물러나게 하기 위해 정년 제도를 운용한다. 연령을 기준으로 정년을 정하며 현재 근로자의 법정 정년은 만60세이다. 흥미롭게도 선진국에서는 법률로 제정한 의무적 정년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경찰, 소방관 등의 특정 직종을 제외하면 연령에 따른 강제적 퇴직은 불법이다.

최근에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며 정년을 65세로 연장하자는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정년은 별 의미가 없다. 정년까지 근무하는 직장인은 드물다. 대부분은 정년 전에 여러 이유로 회사를 떠난다. 임원으로 승진해 나가면 다행이다. 보통은 임원이 되지 못하고 중간에 밀려난다.

경기는 주기적으로 부침을 겪는데 침체기에 기업들은 구조조정에 돌입하고 인원을 감축한다. 희망퇴직 또는 명예퇴직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감원도 몇 년생까지 적용하다는 식으로 나이를 정해 실시한다. 구조조정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실상은 세대교체를 추진하는 것이다. 요즘이 딱 그런 시기이다.



팬데믹과 고금리로 침체된 국내 경기가 계속 악화되는 가운데 미국의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국내 탄핵정국의 불확실성까지 겹치면서 내수와 수출 기업 모두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인력 감축에 나서고 있다. 올 하반기에 삼성전자, 포스코, SK텔레콤, LG디스플레이, 롯데온, 신세계면세점, G마켓 등의 대기업들이 희망퇴직을 실시했다. KT는 전체 인력의 6분의 1에 해당하는 직원들이 회사를 떠났다.

기업들은 주로 50대 임직원을 희망퇴직의 형태로 내보냈는데 그 여파로 50대 고용률이 지난 4월부터 8개월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같은 기간에 30대와 40대의 고용률은 늘어났는데 50대의 고용률만 감소했으니 50대가 감원에 가장 취약하게 노출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임원 인사에서는 더 혹독한 세대교체가 나타났다. 롯데그룹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의 임원 인사를 단행하며 60대 이상 임원의 80%를 퇴진시켰다. 우리은행은 부행장의 절반가량을 물갈이하며 1970년대생 부서장들을 부행장과 임원으로 발탁하여 승진시켰다.

구조조정이라는 태풍에 50~60대 임직원이 쓸려가는 와중에서도 무풍지대가 존재한다. 대기업의 지배주주 경영자들은 모두 안전하게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승진잔치를 벌였다. 실적 부진을 이유로 대거 임직원을 퇴직시킨 식품 및 유통업계의 내수기업에서는 3~4세 경영자들이 회장, 사장, 부사장 등으로 승진하였다. 세대교체의 흐름에 편승해 1986년생 3세가 입사한 지 5년밖에 안 돼 부사장으로 승진한 사례도 있다.

나이에 영향을 받지 않는 철밥통 경영진은 은행권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이사가 70세를 넘어도 임기를 보장받도록 지배구조 내부규범을 개정했는데 이는 연임에 성공할 경우 3년 임기를 채울 수 있게 해주기 위한 조치라는 해석이다. KB금융그룹과 우리금융그룹도 이사가 70세를 넘어도 임기를 보장받도록 하고 있다. 70세가 넘어도 이사를 할 수 있는 직위는 회장밖에 없다. 지배주주가 없는 금융그룹에서 회장이 주인 노릇 하며 70세 넘어서도 계속 하려는 욕심이 씁쓸하게 다가온다.

금융그룹의 70세 임기 연장을 두고 ‘나이는 걸림돌이 아니다’라는 신문논평도 나왔다. 정말 맞는 말이다. 나이는 ‘벼슬’도 ‘걸림돌’도 아니어야 한다. 획일적으로 나이로 끊기 보다는 개인별로 성과를 평가해 정당하게 일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혈연과 경영권의 특혜가 없어도 누구나 나이에 상관없이 오래 능력을 발휘하며 일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내 나이가 어때서 일하기 딱 좋은 나이인데”라는 노랫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외부 필자의 원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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