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내년 예산안을 대폭 감액시켜 강행 처리한 거대 야당이 최근 추가경정예산안 조기 편성을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일 “성장의 하방 압력이 뚜렷해지자 경제 당국이 이제야 추경을 주장하고 나섰는데 늦었지만 다행”이라며 “정부는 국민의 삶을 직시해 지금 바로 추경 편성에 나서기를 바란다”고 촉구했다. 앞서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경기를 소폭 부양하는 정도의 재정 정책이 필요하다”며 추경안이나 주요 경제 법안의 조속 통과를 강조하자 야당이 추경 조기 편성론 군불 때기에 나선 것이다.
내수 침체와 수출 둔화 속에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리스크와 계엄·탄핵 정국의 불확실성까지 겹쳐 우리 기업들과 서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다. 올 들어 11월까지 법인 파산 신청 건수가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이런데도 민주당은 되레 정부 예산안에서 총 4조 1000억 원을 감액한 637조 3000억 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을 야당 단독으로 일방적으로 처리했다. 예비비는 반 토막이 났고 검찰·경찰 등의 특수활동비가 전액 삭감됐으며 애써 늘린 연구개발(R&D) 예산까지 줄었다. 이에 정부가 고육지책으로 내년도 예산 중 75%를 상반기에 집행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거대 야당이 ‘이재명표’ 지역화폐 예산 1조 원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점 등을 내세워 내년 예산안을 칼질해 헌정 사상 처음으로 야당 단독으로 밀어붙인 뒤 새해를 맞기도 전에 추경 편성론을 들고나온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 한은 총재의 언급도 민주당의 일방적인 내년 예산 삭감 탓에 성장률이 더 꺾일 위기에 처했으니 추경 편성을 신중하게 검토하라는 것이다. 거대 야당이 민생 살리기를 위한 진정성을 갖고 있다면 정부에 추경 편성을 요구하기 전에 감액 예산 강행 처리에 대한 사과부터 해야 할 것이다. 예비비 2조 4000억 원 삭감 등 감액 예산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새해 들어 적절한 시기에 추경을 검토할 수 있다. 하지만 추경을 편성하더라도 포퓰리즘을 경계하면서 첨단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취약계층 안정 등을 위한 핀셋 지원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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