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법원이 바꾼 새 통상임금 정의는 비용 측면에서 기업들의 우려를 키운다. 하지만 기존 최저임금과 통상임금 혼란을 해결하는 순기능도 크다. 그동안 일부 사업주는 통상임금 경계에 있는 수당을 활용해 임금을 적게 주는 효과를 누려왔다는 지적이 들끓었다.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린 충격을 산입범위 확대로 해결하려던 문재인 정부의 ‘패착’이 이번 대법원 판결로 해소될 수 있다.
23일 노동계에 따르면 노동계에서는 13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통상임금의 3가지 판단 기준 중 고정성을 폐기한 후 최저임금 제도 재정립에 대한 기대섞인 목소리가 나온다. 그동안 고정성은 재직 여부나 특정 일수 이상 근무 조건을 붙인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할 근거였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줄고 통상임금 범위가 느는 게 임금 측면에서 이득이다. 최저임금 산입범위가 늘면 최저임금 인정·인상 효과가 상쇄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 정부는 최저임금을 급격하게 올리면서 2018년 산입범위를 확대했다. 수당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은 13일 대법원 판단 전까지 고정성 탓에 인정되지 않는 수당이 많았다.
이 상황은 현장에서 최저임금과 통상임금 산입범위에 대한 혼란을 만들었다는 지적이다. 오민규 노동문제연구소 해방 연구실장이 올 6월 국회에서 연 최저임금 토론회에서 공개한 설문조사 따르면 118개 금속노동조합 사업장 가운데 약 89%는 기본시급이 법정 최저시급보다 낮았다. 또 통상임금의 시급이 법정 최저시급에 미달하는 비율은 약 20%로 조사됐다. 오 실장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이전엔 최저임금은 기본급이라는 도식이 성립될 정도였다”며 “이젠 기본급이 법정 최저시급 이상인 사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가 됐다,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1개월 1회 이상 지급금 모두 최저임금에 산입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반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는 임금이 줄어든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 상황은 세 가지 문제로 요약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사업주에게 기본급을 올리지 않고 상여금과 수당을 활용하도록 유도했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최저임금 인상의 순수 효과가 둔감된다. 근로자가 수당에 더 의존하는 가산수당 취지를 거스르는 상황이 뒤따랐다. 당초 연장·휴일·야간근로에 가산 수당이 붙는 이유는 이 방식의 근로를 줄여 근로자의 쉴 권리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 현장의 고질병인 임금체계를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결과도 낳았다. 통상임금을 피할 여러 수당이 생겨났기 때문이다. 다양한 수당이 만든 복잡한 임금체계는 근로자 입장에서 정당한 임금을 받고 있는지 판단이 어렵다. 노사 갈등이 심해지고 근로감독 사각지대도 늘렸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복잡한 임금 체계를 두고 노사가 법원을 찾고 정부의 판단도 그만큼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뒤늦게 이런 상황을 바로잡으려는 입법 활동이 활발하다. 21대에 이어 22대 국회에서도 최저임금 산입범위 임금을 통상임금에 모두 포함하도록 한 근로기준법 개정안(박해철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발의됐다. 통상임금 하한선을 최저임금으로 두자는 의견도 담겼다. 다만 이 방식은 기능, 목적, 계산 등 너무 다른 최저임금과 통상임금을 같은 선상에 둘 수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남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