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범위를 두고 당리당략에 따른 해석을 내놓고 있다. 헌법·법률이 세세한 규정하지 않고 전례 또한 없어 여야의 아전인수격 주장이 국정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 헌법학자들은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게 원칙”이라면서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제하는 게 옳다”고 해석한다.
24일 여야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3인(국회 추천 몫) 임명권 문제를 두고 대치 중이다. 더불어민주당은 “헌법재판관 임명은 한 권한대행의 의무”라고 주장하는 반면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심판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불가능”이라고 맞선다.
양당은 모두 ‘권한대행은 일체의 업무에서 유지·관리에 그쳐야 한다’는 헌법학계 통설에 동의한다. 하지만 ‘현상 유지적 행동’에 대해 명확한 규정이 없어 여야는 입맛에 맞는 해석을 내놓고 있다.
우선 민주당 국회가 추천한 재판관을 임명하는 건 형식적 결재 절차에 불과한 만큼 한 권한대행의 임명은 수동적 행사에 해당한다고 본다. 반면 국민의힘은 ‘행위의 결과’에 보다 방점을 찍는다. 헌법재판관 3명을 추가로 임명하게 되면 차후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 명백하므로 이는 ‘현상 변경적 행위’에 해당한다는 논리를 편다.
여야가 여론전을 치중하는 또 하나의 쟁점은 ‘거부권 행사’다. 이를 두고는 야당이 소극적 행사를, 여당이 적극적 행사를 주장한다. 민주당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권한대행은 민주적 정당성이 취약해 대통령의 헌법상 권리를 행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한 권한대행의 거부권 행사는 곧 월권으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는 이유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정에 변화를 초래하는 위헌·위법적 법안에 대한 거부권 행사는 “현상 유지 행위”로 규정한다.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은 “대통령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모든 권한을 인계 받는다”고 해석한다. 다만 이들은 ‘자제의 원리’를 함께 강조한다. 한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거부권 행사 자체를 원천 봉쇄할 수는 없으나 ‘현상 유지’에 그쳐야 하는 직분을 감안해 스스로 자제하는 게 올바르다는 게 이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거부권은 입법권과 행정권 사이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헌법이 부여한 권한이다. 권한대행 또한 당연히 행사할 수 있다”며 “권한대행은 (국정) 방향을 선회하는 결정은 못 할 뿐 대통령이 할 수 있는 권한은 다 행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논쟁적 영역이라 여러 해석도 가능하다”고 열린 태도를 보이면서도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입장을 뒤집는 여야의 행태는 공통되게 비판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은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 당시 ‘권한대행의 임명권’ 문제를 두고 지금과 정반대의 주장을 펼친 바 있다. 특히 국민의힘은 현재 “장관 임명권은 행정부 수반의 권한, 헌법재판관 임명은 국가 원수의 권한”이라며 ‘장관 임명론’, ‘헌법재판관 임명 불가론’을 동시에 펴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도 정치적 셈법에 따라 사안별로 각기 다른 논리를 적용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또 다른 헌법학자는 “만일 전시 상황이 된다면 권한대행이 군 통수권을 갖고 전쟁을 치러야 한다. 그때 가서도 여야는 권한대행은 권한이 없다고 논쟁할 것이냐”며 “외통수 격으로 헌법을 해석했다가 국가비상사태가 발생하면 나라는 누가 지킬 것인가”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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