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술시장은 경기 침체의 영향을 받아 찬바람이 불었다. 시장의 가늠자 역할을 하는 미술품 경매 규모가 2020년 수준으로 줄었고 아트페어를 찾는 관람객의 발길도 감소해 경기 침체 충격파를 고스란히 받은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개별 작가들은 세계 최고로 여겨지는 미술관에 단독으로 이름을 올리며 한국 미술의 저력을 과시했다. 최대 규모의 토종 아트페어 ‘키아프(Kiaf)’도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함께 열리는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에 뒤지지 않는 모양새를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사단법인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와 아트프라이스가 국내 10개 경매사의 자료를 수집해 발표한 ‘2024 국내 미술품 경매 시장의 연말 결산’에 따르면, 올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지난 2020년 이후 5년 내 최저치를 기록했다. 국내 미술품 경매 낙찰 총액은 2020년 1153억 원에서 2021년 3294억 원으로 몸집을 키웠다. 세계 최대 아트페어 중 한 곳인 프리즈가 한국에서 개최된 덕분에 미술 시장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이다. 하지만 금리인상과 글로벌 경기침체 여파로 2020년 2360억 원, 2023년 1535억 원으로 낙찰 총액이 지속적으로 줄었고, 올해는 프리즈가 개최되기 전인 2020년보다 낮은 1151억 원을 기록했다.
경매 낙찰액이 감소하며 미술 시장이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았지만 개별 작가들은 해외 대형 미술관에 이름을 올리며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30대 젊은 작가인 이미래는 세계 최고의 현대 미술관으로 꼽히는 테이트 모던 터빈홀에서 한국 작가로는 첫 번째 단독 개인전을 열었다. 이미래는 아니쉬 카푸어, 울라퍼 엘리아슨, 아이웨이웨이 등 세계적 거장들이 거쳐간 터빈홀에서 ‘열린 상처’라는 이름으로 35m 높이의 터빈홀을 자신 만의 공간으로 탈바꿈 시켜 화제를 모았다.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메트) 정면 외벽에는 한국 작가 이불의 조각 작품 4점이 전시됐다. 메트는 해마다 1명의 작가를 선정해 해당 공간에 작품을 전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불은 이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린 첫 번째 한국 작가다.
한국의 주요 작가들이 해외에서 활약하는 동안 정부는 9월 열리는 ‘프리즈 서울’과 ‘키아프’를 세계가 방문하는 한국만의 축제로 만드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두 아트페어와 비슷한 시기에 열린 부산 비엔날레, 광주 비엔날레를 모두 엮어 ‘대한민국 미술 축제’라는 브랜드로 확장했고, 국내 주요 미술관은 ‘접속하는 몸: 아시아 여성 미술가들(국립현대미술관)’, 서도호(아트선재센터), 니콜라스 파티(호암미술관) 등 비엔날레를 방불케 하는 역대급 전시를 열며 축제의 품격을 높였다.
작가들의 활약과 정부의 지원은 국내 최대 토종 아트페어 키아프의 약진으로 이어졌다. 키아프는 3년간 프리즈 서울과 함께 열리며 규모와 행사의 수준 면에서 비교적 아쉽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하지만 올해 키아프는 지난 2년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변화를 단행하며 질적으로 성장했다. 우선 전체 참여 부스 수를 줄이고, 건축가 장유진과 협업해 부스 배치 디자인을 개선했다. 덕분에 관람객은 좀 더 쾌적해진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고, 각 갤러리가 내건 작품의 수준도 높아졌다. 전체 206개 참가 갤러리 중 3분의 1 이상을 해외 갤러리로 채웠고 VIP 방문객은 전년대비 6% 증가하는 성과를 냈다.
한국 미술계의 희소식은 연말에도 이어졌다. 조각가 김윤신은 미국 온라인 미술품 플랫폼인 아트시(Artsy)가 선정한 올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작가 10인에 이탈리아 현대미술 거장 마우리치오 카텔란 등과 함께 이름을 올렸다. 아트시는 김윤신에 대해 “올해 88세의 나이로 세계 미술계에 극적으로 등장해 올해 제 60회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두각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