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27일 첫 변론 준비 기일을 시작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정치 생명을 좌우할 탄핵심판 절차에 본격 착수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윤 대통령이 대리인 선임계를 제출하지 않는 등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는 데다 여야가 평행선을 걸으면서 3인의 헌법재판관 추가 선임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헌재가 6인 체제로 심리에 나설 경우 윤 대통령 측이 ‘불완전 합의체’를 이유로 법적 문제를 제기하는 등 이른바 ‘시간 끌기’ 전략에 나설 수 있어 향후 탄핵심판 과정에 험로가 예상된다.
헌재는 26일 연 정기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의 탄핵심판 변론 준비 기일을 27일 오후 2시 소심판정에서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밝혔다. 변론 준비 기일은 변론에 앞서 쟁점을 정리하고 심리 계획을 세우는 절차로 수명재판관인 정형식·이미선 재판관이 진행한다. 주심은 정형식 재판관이다.
문제는 변론 준비 기일을 하루 앞둔 상황에서도 윤 대통령 측이 대리인 선임계조차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헌재가 요구한 12·3 비상계엄 관련 국무회의 회의록, 계엄 포고령 1호 등 서류도 제출되지 않았다. 헌재는 대리인 선임의 경우 “재판부에서 결정할 사항”이라는 입장이다. 이는 어느 정도 정해둔 시점까지 윤 대통령 측이 무응답으로 일관하면 재판부 판단에 따라 국선 대리인을 선임할 수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김형두 헌법재판관도 이날 출근길에서 ‘윤 대통령에게 제출을 요구한 포고령을 국회에서 제출한 것으로 갈음할 수 있느냐’는 기자들 질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윤 대통령 탄핵심판에서 청구인인 국회 측을 대리하는 법무법인 LKB앤파트너스·이공·시민은 앞서 23일 헌재에 소송 위임장과 담당 변호사 지정서를 제출했다. 다음날인 24일에는 서증과 증인 신청 등이 포함된 입증 계획과 증거 목록도 냈다. 반면 윤 대통령 측은 관련 서류 제출·출석 여부 등에 대해 무응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법조계 안팎에서 첫 변론 준비 기일을 두고 “윤 대통령이 불출석하면서 공전할 수 있다” “기일이 늘어날 뿐, 예정대로 진행될 수 있다”는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이유다.
게다가 헌법재판관 3인이 공석인 현 6인 체제가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점도 향후 탄핵심판 과정의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 헌재는 이날 브리핑에서 “헌재 사무처장과 재판관 후보자 3명 모두 ‘국회 몫 재판관을 권한대행이 임명할 수 있다’고 답변한 걸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헌법에 따라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추가로 임명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취지다. 하지만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은 이날 대국민 담화에서 “여야가 합의해 안을 제출할 때까지 헌법재판관 임명을 보류하겠다”고 밝혔다. 여야가 현재와 같이 평행선만 이어간다면 헌법재판관 추가 선임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다. 이 경우 헌재 6인 체제로 심의·의결을 할 수 있을지를 두고 양측이 치열한 법리 싸움에 나설 수 있다.
특히 ‘심리를 할 수 있다’는 헌재와 ‘불완전한 합의체’라는 윤 대통령 측 주장이 첨예하게 충돌하면서 탄핵심판 절차가 ‘제자리걸음’만 되풀이할 가능성도 있다. 헌법재판소법에서는 심리를 위한 헌법재판관 수를 7명으로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헌재는 앞서 “재판관 공백으로 심판 절차가 정지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이진숙 방송통신위원장의 가처분을 받아들인 만큼 변론은 물론 심리도 진행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윤 대통령 측 수사 변호인단·탄핵심판 대리인단 구성에 관여하고 있는 석동현 변호사는 앞서 “변론 준비 절차는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을 법률가로서 부인하고 있지는 않지만, 본격적인 심리를 6인 체제로 할 수 있느냐를 포함한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논쟁적 요소가 있는 게 사실”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재는 재판관 한 명만 없더라도 결정 자체를 못하는 불안한 상태이기는 하지만 현 6인 체제로 심리·결정하는 데 문제는 없다”고 분석했다. 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6인으로도 결정할 수 있다는 게 헌법재판소법에 명시돼 있다”며 “비상적 상황이니, (헌재가 추가 선임이 안 되더라도) 6인이 결정할 수 있다는 법리적 해석을 내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현행 법률에 따라 해석해 헌재가 심리·결정까지 이어갈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헌재가 1명의 이견만 나와도 결론이 바뀌는 현 상황에서 국가 중대사를 결정해야 하는 점은 부담 요소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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