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윤 한미사이언스(008930) 사내이사가 어머니 송영숙 한미사이언스 회장, 여동생 임주현 한미사이언스 부회장과 손을 잡았다. 송 회장 모녀가 포함된 ‘4자 연합’에 보유 지분 일부를 매각하는 방식이다. 지분이 넘어오면 4자 연합은 한미사이언스 지분 과반 이상을 확보하게 된다. 올해 초부터 1년여간 진행된 한미약품(128940)그룹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들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한미사이언스는 26일 임 이사가 송 회장, 임 부회장, 신동국 한양정밀 회장, 킬링턴 유한회사 등 4자 연합에 주식 5%를 매도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공시했다. 주식 처분 금액은 총 1265억 원이다. 킬링턴 유한회사는 라데팡스파트너스가 설립한 특수목적법인(SPC)이다. 신 회장이 205만 1747주(3%), 라데팡스가 136만 7831주(2%)를 각각 인수한다. 주당 매각 가격은 3만 7000원이다. 거래 종결 예정일은 다음달 27일이다.
4자 연합은 23일 기준 한미사이언스 지분 49.42%를 보유 중이다. 임 이사가 보유한 지분 5%를 합치면 54.42%를 확보하게 된다. 4자 연합과 특수 관계인 등 우호지분은 주주총회 특별결의 사안을 통과시킬 수 있는 지분(전체 의결권 지분 중 3분의 2 이상)을 보유하게 되는 셈이다. 양측은 주식 거래 계약과 함께 경영권 분쟁 종식, 그룹의 거버넌스 안정화, 전문경영인 중심 지속가능한 경영 체제 구축 등의 합의도 도출했다. 서로 제기한 민형사상 고소, 고발도 모두 취하하기로 했다.
4자 연합은 “이번 합의를 통해 그룹 거버넌스 이슈를 조속히 안정화하고 오랜 기간 주주가치를 억눌렀던 오버행 이슈도 대부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대주주간 협력, 화합을 통해 경영권 분쟁 종식은 물론 주주가치 제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 한미는 하나의 큰 방향성을 가지고 ‘글로벌 한미’를 향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해 나갈 것이며 이 과정에서 임종윤 주주도 4자 연합에 적극 힘을 보탤 것으로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임 이사가 지분을 4자 연합에 넘기면 임씨 형제의 한미사이언스 지분율은 19.47%로 줄어들어 4자 연합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임 이사의 지분은 6.79%, 임종훈 한미사이언스 대표는 7.85%다.
업계에서는 임 이사가 상속세 재원 마련 문제를 염두에 두고 이번 결정을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임 이사는 4, 5일 이틀간 한미사이언스 주식 총 38만 9838주를 매각한데 이어 6일과 10일에도 각각 보유주식 4982주와 6만 1739주를 매각했다. 주식담보대출 계약 연장 실패, 마진콜(추가 증거금 요구) 발생 등에 따른 것이다. 그럼에도 내년 만기가 도래하는 주식담보대출 상환과 상속세 납부를 위해 추가 자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재원 마련이 필요한 임 이사가 먼저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임 이사는 19일 열린 한미약품 임시주주총회 철회를 제안하며 경영권 분쟁 장기화를 방지하고 회사의 미래를 위해 대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가 책임 있는 논의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17일에는 송 회장 모녀에 먼저 대화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임씨 형제 측의 고민이 깊어진 형국이다. 현재 한미사이언스 이사회는 4자 연합과 형제 측이 5대 5 구도로 균형을 이루고 있다. 지난달 28일 열린 한미사이언스 임시 주주총회에서 4자 연합이 추천한 신동국 기타비상무이사 선임 안건이 가결되면서 이사회 구도가 동수로 재편됐다. 이 상황에서 임 이사가 4자 연합에 협력한다면 경영권 분쟁이 마무리될 가능성이 크지만 그는 아직 명확한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임 대표 역시 입장을 내놓지 않은 상태다. 임 이사의 이번 결정도 단독으로 이뤄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임 대표 측은 “형님이 이 상태로 계속 다툼만 해서는 여러모로 안 되겠다는 답답함에 결심한 걸로 알려왔다”면서 “형님과 논의 중”이라고만 밝혔다.
임 이사의 향후 행보에 따라 경영권 분쟁의 마무리 시점이 달라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임 이사와 4자 연합의 합의에는 의결권 공동행사 계약이 포함되지 않았다. 4자 연합간 계약에는 의결권 공동행사 조항과 지배주주 지분 매각 시 다른 주주도 동일한 조건으로 매각을 요구할 수 있는 동반매각참여권이 명시돼 있지만 임 이사와 4자 연합의 계약에서는 이 부분이 제외돼있다. 만약 임 이사가 현재 입장대로 이사회에서 임 대표를 지지한다면 형제 측 이사진의 임기가 만료되는 내년 한미사이언스 정기 주주총회까지 교착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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