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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덕 칼럼] 지금은 개헌이 아닌 개혁을 해야 할 때다

계엄 사태로 헌법 읽기·개헌론 바람

與 “87체제 탓” 쇄신 없이 책임 회피

제왕적 대통령제·의회 독식 해소해야

득표율·의석 균형 위해 선거제 개편을

사진 설명




12·3 계엄 사태 이후 헌법이 화두로 떠올랐다. ‘정치 박물관’에 박제돼 있는 줄 알았던 ‘계엄’이 느닷없이 재등장한 것이 계기가 됐다. 헌법 읽기 열풍까지 부는 가운데 헌법 개정론이 분출하고 있다. “대통령제는 미국 국경을 넘는 순간 민주주의에 대한 ‘죽음의 키스’로 변한다”는 독일 출신 헌법학자 카를 뢰벤슈타인의 말도 재소환되고 있다. 개헌론자들은 이 말을 꺼내며 권력 구조 개편을 외치고 있다. 이들은 계엄·탄핵 사태까지 초래한 원인으로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 문제뿐 아니라 제도의 결함도 지목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와 승자독식 구조가 극한 대립 정치를 초래했다면서 권력 분산형 권력 구조로 개헌하자고 주장한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중임 정·부통령제 또는 내각제, 이원집정부제 등으로 바꾸자는 것이 골자다.

야당에서도 개헌론이 나오지만 목소리를 높여 헌법 개정을 주장하는 쪽은 생존이 위태로운 여당이다. 권성동 국민의힘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최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만나 슬쩍 개헌 카드를 꺼냈으나 이 대표는 ‘지금은 탄핵에 집중할 때’라며 선을 긋고 있다. 여당의 상당수 대선 주자들은 “87체제 헌법의 한계를 인정해야 한다”며 개헌론에 불을 지피고 있다.

1987년 국회 주도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대통령의 의회 해산권을 삭제했다. 하지만 의석 구도에 따라 ‘제왕적 대통령’ 또는 ‘제왕적 의회 권력’을 낳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지적이다. 한국헌법학회 회장인 지성우 성균관대 교수는 “여당이 과반의 안정 의석을 확보하면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이어 “야당이 압도적 과반 의석을 차지하면 입법권·예산심의권·탄핵소추권 등을 가진 의회 권력의 독주를 막기 어렵다”고 했다. 헌법의 적지 않은 결점들을 보완하기 위한 개헌 필요성이 있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87체제 헌법을 탓하는 조기 개헌론은 외려 여러 부작용을 낳는다. 특히 여당의 개헌론 제기는 반성과 쇄신 없이 계엄·탄핵 책임론에서 벗어나기 위한 시간 벌기 꼼수로 비칠 수밖에 없다. 계엄 사태의 최대 책임은 자신이 외치던 상식과 법치를 뒤흔든 윤 대통령에게 있지만 집권당의 책임도 적지 않다. 국민의힘은 윤 대통령의 과오를 바로잡는 역할을 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22대 총선에서 108석밖에 얻지 못했다. 내각제였다면 정권을 내줘야 할 중대 위기를 맞은 셈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과 한동훈 전 대표 등 여권 지도부는 아무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고 흔들리는 배에서 볼썽사나운 집안싸움만 벌였다.

현시점의 개헌 논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것처럼 많은 문제점과 갈등을 야기할 수 있다. 개헌 쟁점을 둘러싼 진영·이념 대립으로 국론 분열이 증폭될 우려가 크다. 또 여야의 의석 균형이 무너진 상태인 만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개헌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다. 야권과 진보 진영의 일부 인사들은 그동안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 개정을 주장해왔다. 야권에서는 헌법 전문 및 4조에 규정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 표현을 삭제하자는 얘기도 나온다. 만일 이런 주장들이 실현된다면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법치주의를 골자로 하는 헌법 가치는 흔들리게 된다.

개헌 논의는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진행되는 게 바람직하다. 다만 그 전에 정치 양극화와 극단적 대립 정치를 해소하기 위해 선거·의회·정당을 비롯한 정치 제도·문화 전반의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우선 각 정당의 득표율에 가깝게 국회 의석을 배분해야 의회의 승자독식 구조 폐해를 줄일 수 있다. 올해 4월 총선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역구 득표율 차이는 5.5%포인트(50.6% 대 45.1%)였으나 비례대표를 포함한 전체 의석수는 175석(58.3%) 대 108석(36.0%)으로 엄청나게 벌어졌다. 득표율과 의석의 불균형을 시정하려면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를 포함한 혼합형 선거구제로 전환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미국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저서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에서 “상호 관용과 권리 행사 절제의 두 규범이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가드레일”이라고 강조했다. 관용과 절제의 규범이 작동될 수 있게 정치 제도·의식 전반의 개혁을 해야 민주주의가 뿌리내릴 수 있다. 지금은 개헌이 아닌 개혁을 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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