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가 또다시 벼랑 끝에 몰렸다. 윤석열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사태로 ‘올스톱’됐던 고위급 접촉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체제에서 겨우 복구되나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의 탄핵 절차에 돌입하며 한국 외교가 다시 격랑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대행’ 체제서 고위급 외교는 사실상 불가능한 만큼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진 상황이다.
한 대행은 지난 14일 국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통화하며 고위급 접촉을 이어갔다. 한 권한대행은 바이든 대통령에 “북핵 위협과 러북협력에 한미연합방위태세의 공고함이 중요하다”며 한미동맹을 유지할 것이라 강조했고 바이든 대통령은 “한국의 민주주의를 신뢰한다”고 화답했다. 이시바 총리와의 통화에서도 앞으로도 한일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발전될 수 있도록 계속 협력해 나가고 내년 한일 국교정상화 60주년 준비 작업을 착실히 추진해 나가기 위해 향후에도 필요한 소통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24일 주한일본상공회의소, 26일에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와 간담회를 가졌고, 추후 외국 기업의 대한(對韓) 투자 위축을 막기 위해 중국, 독일 등 관계자도 만났다.
정상급 외교가 재개되자 외교 당국도 움직였다. 김홍균 외교부 1차관과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 23일 미국 워싱턴 DC 국무부에서 양국 회담을 열고 연합방위 태세를 굳게 하기로 했는데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한미 외교부 고위 당국자의 첫 만남이었다. 미 정부는 앞서 지난 3일 이후 한미 핵협의그룹(NCG) 회의 및 도상연습, 로이드 오스틴 국방부 장관의 방한 등을 연기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 역시 24일 왕이 중국 외교부장과 30분간 전화 통화를 가졌다. 조 장관은 왕 부장에 “대통령 권한대행 체제 아래서도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지속 발전시켜 나간다는 우리 정부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전했고 왕 부장은 “한중 관계의 양호한 흐름이 이어지도록 한국 측과 다양한 분야에서 긴밀히 소통해 나가자”고 화답했다.
한 권한대행마저 탄핵된다면 정상외교 뿐 아니라 실무급 접촉과 교류도 중단 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 달도 안남은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대(對)미 외교가 셧다운 될 수 있다는 불안이 크다. 현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교류는 민간 차원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마러라고 회동’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김대식·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취임식 관련 행사에 초청된 정도다.
외신들도 정치적 위기 심화로 한국이 당분간 고위급 외교가 불가능할 것이라 내다봤다. AP통신은 26일(현지시간) 한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소추안 발의 소식을 전하며 “윤 대통령에 이어 한덕수 권한대행에 대한 탄핵 가능성도 제기되면서 고위급 외교를 중단시키고 금융 시장을 흔들었던 정치 마비가 심화될 수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백악관에 복귀해 한국과 같은 수출 의존 국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보호무역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더 압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아사히신문도 “한 권한대행까지 탄핵되면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서 시작된 국정 혼란은 더욱 가중될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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