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국무총리마저 27일 탄핵되며 대한민국호가 선장을 또 잃었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대통령 권한대행의 직무대행으로 국군통수권자 지위에 올랐지만 ‘대행의 대행’은 국가 정상의 권한을 극히 일부만 행사할 수 있다. 리더십 공백은 물론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3주 앞두고 코리아 패싱이 현실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당장 최 권한대행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나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와 전화 통화를 할 수 있을지마저 불확실하다.
한 총리의 탄핵소추안 가결에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은 외교안보 분야다. 가장 큰 문제는 보름 사이 연이어 대통령과 국무총리가 탄핵을 당하며 한국의 리더십 자체가 붕괴됐다는 점이다. 당분간 주요국을 대상으로 한 정상외교는 시도조차 어려울 수밖에 없다. 거대 야당이 최 권한대행마저 탄핵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니 정부 간 고위급 대화에 나서기 어려운 것이다.
최 권한대행 역시 기자들과 만나 “권한대행의 대행은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라며 한 총리에 대한 탄핵소추를 멈춰 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미국뿐 아니라 그 어떤 나라도 언제 물러날지 모르는 정상과 대화하고 싶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실제로 외교가에서는 최 권한대행이 동맹국인 미국이나 가까운 일본 정상과 전화 통화마저 쉽지 않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주미대사를 지내며 외교 경험도 있는 한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이후 잇따라 바이든 대통령과 시게루 총리와 통화하며 한미일 공조 체제를 확인한 바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커녕 그간 협력을 이어가던 바이든 행정부와의 접촉마저 쉽지 않아질 위기에 처한 셈이다.
고위급뿐 아니라 실무급 접촉과의 교류도 중단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한 달도 안남은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대미 외교가 셧다운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크다. 현재 트럼프 당선인과의 교류는 민간 차원에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의 ‘마러라고 회동’과 류진 한국경제인협회 회장, 김대식·조정훈 국민의힘 의원이 취임식 관련 행사에 초청된 정도다. 트럼프 2기에서 미북 대화가 재개될 가능성이 높은데 우리는 손발이 묶인 채 바라만 봐야 하는 상황이 됐다.
외신들도 한국이 정치적 위기 심화로 당분간 고위급 외교가 불가능하다고 내다봤다. 뉴욕타임스는 “권한대행 축출로 한국의 정치적 공백이 장기화됐다”며 “이는 미국의 가장 주요한 동맹국에서 누가 정부와 군을 책임지고 있는지에 대한 새로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블룸버그통신은 “트럼프 당선인이 백악관에 복귀해 한국과 같은 수출 의존 국가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다양한 보호무역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되면서 (한국의)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치적 불확실성이 경제를 더 압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우리나라의 대외신인도도 문제다. 13일에 불과한 초단명 권한대행 체제를 본 외국 기업과 투자자들은 한국 시장에 의구심을 보내고 있다. 국가 간 협상이 요구되는 원자력발전·방위산업 등 주요 수출 산업의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불안도 크다.
내년 1%대 저성장이 우려되는 가운데 출렁이는 금융·외환시장에 대응하는 기재부의 경제정책 조정 능력에도 당분간 힘이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부총리, 한국은행 총재, 금융위원장, 금융감독원장 등이 참여해 ‘F4’ 회의로 불리는 거시경제 금융현안 간담회를 비롯해 경제정책 관련 범정부 회의 대다수는 최 권한대행이 주재해왔다. 관가에서는 최 부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으며 그간 주재해온 경제정책 회의체를 차관급으로 격하해 운영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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