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가 극단적으로 대립하는 가운데 거대 야당이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소추안까지 밀어붙여 국정 마비가 우려되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의 탄핵소추안이 27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서 가결됐다. 재적 의원 300명 가운데 야당 의원 191명과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 등 192명이 찬성했다.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은 총리까지 탄핵소추로 직무가 정지된 것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탄핵안 가결로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권한대행을 맡게 돼 ‘권한대행의 대행’ 체제가 등장했다. 우원식 국회의장은 이날 ‘국무총리 한덕수 탄핵안’으로 규정하고 “재적 의원 과반수 찬성으로 가결된다”고 밝혔다. 이에 항의해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 불참했고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 의원들만 참여했다. 민주당은 26일 ‘헌법재판관 3인 임명 거부’ 등 5가지 사안으로 한 권한대행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한 권한대행의 탄핵안 통과로 비상계엄 및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빚어진 정치·경제·외교적 혼란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게다가 가결 정족수와 관련해 대통령·총리 기준 중 어느 쪽을 적용해야 하는지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탄핵소추가 이뤄짐에 따라 국정 혼돈이 극심해질 수 있다. 당장 국민의힘이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 및 효력정지가처분을 신청해 법정 공방이 가열될 것이다.
이 지경에 이른 것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여야의 극단적 대결 때문이다. 민주당은 압도적인 의석을 내세워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 ‘방탄’을 위해 조급하게 탄핵·특검을 남발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감사원장·장관·검사 등을 가리지 않고 총 29차례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입법 폭주도 모자라 감액 예산안까지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국민의힘은 정부와 함께 국정 운영의 중심을 잡고 개혁을 뒷받침해야 하는 본래의 역할을 전혀 하지 못하고 진흙탕 계파 싸움으로 시간을 허비했다. 또 야당의 공세에 대해 뚜렷한 전략 없이 비난과 반발로 일관했을 뿐이다.
여야는 경제 불확실성 증폭의 책임을 두고도 ‘네 탓’ 공방만 벌였다. 헌법재판관 임명 등을 둘러싼 논란의 이면에도 이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 조기 대선을 치르고 싶은 민주당과 탄핵심판을 최대한 지연시키려는 국민의힘의 정략적 계산이 깔려 있다. 정치권은 국정 혼란을 가중시키는 무한 정쟁의 ‘치킨게임’을 멈추고 한 발씩 양보해 국정 마비의 파국을 막아야 한다. 여야와 정부는 헌법재판관 임명과 내란 특검 및 김건희 여사 특검에 대해 헌법과 상식에 맞게 접점을 찾아 대혼돈을 끝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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