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난데없는 비상계엄 선포로 대한민국을 뒤흔든 지 어느덧 한 달이 흘렀다. 국회로부터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넘겨받은 헌법재판소는 탄핵 심판 절차에 착수했다.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통치행위이자 고도의 정치 판단”이라는 윤 대통령의 궤변에도 불구하고 내란죄 혐의를 뒷받침할 만한 정황들은 속속 드러나고 있다.
윤 대통령 스스로 안전핀을 뽑은 ‘자폭’ 계엄은 당원으로 몸담고 있는 국민의힘에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야당이 ‘12·3 비상계엄 사태’의 책임을 물어 윤 대통령 탄핵에 나서자 국민의힘은 탄핵 찬반을 놓고 둘로 쪼개졌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 이후 탄핵 찬성을 주창했던 한동훈 대표는 취임 5개월 만에 쫓겨나듯 물러났다.
탄핵 찬성파와 반대파의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의원들의 단체대화방 메시지와 비공개 의원총회 녹음이 외부로 유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국민의힘이 사분오열되는 동안 더불어민주당과의 지지율 격차는 ‘더블스코어’로 벌어졌고 당원들의 탈당 행렬도 이어졌다. “당이 완전히 망하는 길로 가고 있다”는 유승민 전 의원의 쓴소리가 전혀 무색지 않은 상황이다.
탄핵 정국 수습을 위해 국민의힘은 현 정부 출범 이후 벌써 다섯 번째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지만 탈출구는 보이지 않는다. 국민들은 헌재의 신속한 탄핵 심판을 통해 국가적 혼란을 조기에 마무리하길 원했지만 여당 지도부는 오히려 탄핵 지연 작전을 택했다. 다수의 헌법학자들은 물론 헌법재판소와 대법원마저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국회가 추천한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는 데 문제가 없다고 밝혔지만 권성동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는 ‘권한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 불가’ 카드를 꺼내 들었다. 여당 압박 속에 한 권한대행은 끝내 임명 불가를 강행하면서 대한민국은 ‘대통령 권한대행의 대행’이라는 초유의 대혼란 시대를 맞게 됐다. 오죽하면 대표적 보수논객인 조갑제 전 월간조선 편집장마저 “(8년 전)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요구했던 권 의원이 지금 그보다 탄핵 사유가 만 배나 엄중한 윤 대통령 보호에 나선 것은 코미디”라고 꼬집었을까.
법과 질서를 수호하는 건 보수의 가장 중요한 가치다. 그걸 저버린 윤 대통령을 계속 엄호하는 건 보수 정당의 존립 근거를 부정하는 짓이나 다름없다. 당장 30일 출범하는 ‘권영세 비대위’는 탄핵 정국에 대한 대국민 사과와 처절한 반성과 함께 윤 대통령 출당이나 제명과 같은 단호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탄핵의 시계를 늦추려는 시도도 그만둬야 한다. 윤석열을 버려야 보수가 살고 국민의힘도 살 수 있다. 집권 여당으로서의 책임감을 망각하고 또 다시 국민의 목소리를 외면한다면 국민의힘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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