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재건축·재개발 등 정비사업은 공사비 상승의 여파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조합과 시공사는 공사비 인상을, 조합과 지방자치단체는 기부채납(공공기여)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이 같은 갈등은 고스란히 사업 지연과 착공 물량 감소로 귀결될 수밖에 없어 향후 공급 절벽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30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올해 건설공사비지수는 △1월 129.77 △5월 130.2 △10월 130.32로 2020년과 비교했을 때 30% 정도 높은 수준에서 머무르고 있다. 건설공사비지수는 공사에 투입되는 재료·노무·장비 등 직접공사비의 가격 변동을 보여주는 지표로, 2020년 지수 100을 기준으로 삼는다. 이 지수는 △2021년(10월 기준) 116.79 △2022년 125.60으로 오르다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등 요인으로 지난해 129.13으로 치솟았다. 최근 들어 원자재 가격은 점차 안정되고 있지만 인건비 및 환율 상승 등 영향을 받아 공사비 고공행진이 계속되는 상황이다.
이로 인해 전국 정비사업장에서 조합과 시공사가 설계 변경과 원가 반영을 위한 공사비 인상을 둘러싼 분쟁을 벌였다. 서울 송파구 잠실진주아파트 재건축 사업은 2021년 착공 당시 3.3㎡당 공사비가 666만 원으로 책정됐다. 하지만 시공사인 삼성물산과 HDC현대산업개발이 지난해 10월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며 갈등이 생겼고, 9개월 만인 올해 7월 3.3㎡당 811만 5000원의 공사비에 양측이 합의했다. 서울 은평구 대조1구역 재개발은 조합 내분으로 공사기간이 연장돼 현대건설이 공사비 증액에 나서며 새해 첫날부터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경기 남양주 평내진주아파트 재건축 조합은 시공사 서희건설과 공사비 증액에 이견을 보이다 올해 1월 브릿지론 이자 납입에 실패해 현재 1200여 가구 전체에 대한 경매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부산 부산진구 촉진4구역 재개발 조합은 현대엔지니어링이 2016년 계약 때보다 2.5배 많은 공사비(3.3㎡당 1126만 원)를 요구하자 8월 시공 계약을 해지했다.
시공사와 조합 간 갈등이 동시다발적으로 터지자 지방자치단체도 적극 중재에 나서고 있다. 대구시는 지난 2월 전국 최초로 재건축 조합(범어우방1차아파트)과 시공사 간 공사비 분쟁 조정에 성공했다. 서울시는 올해 총 15곳의 정비사업장에 전문가를 파견했으며 이 중 6곳에서 합의를 이끌어냈다.
한편 지자체와 정비사업 조합은 기부채납을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다. 대표적으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시범아파트는 단지 내 기부채납지에 ‘노인 유치원’이라고도 불리는 데이케어센터 설치를 두고 일부 조합원이 반발해 약 1년간 사업이 지연됐다. 결국, 서울시가 용적률 완화 등 인센티브를 취소하겠다고 경고하면서 조합과 시행자(한국자산신탁)는 지난달 데이케어센터 설립을 수용했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7차는 서울시가 종 상향에 따른 추가 기부채납을 요구해 사업 방식을 공공 재건축에서 민간 재건축으로 바꿀지 검토하고 있다.
권대중 서강대 일반대학원 부동산학과 교수는 기부채납 갈등에 대해 “공사비 급등으로 재건축·재개발 사업성이 낮아지면서 조합원들이 기부채납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다 보니 문제가 부각된 측면이 있다”며 “부동산 경기를 둘러싼 거시적인 상황이 변하지 않은 만큼 내년에도 정비사업과 개발사업에서 민관 갈등, 주민 간 갈등이 이어지며 사업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어 “기부채납 갈등은 결국 소통 부재가 원인”이라며 “지자체는 정비사업에서 기부채납이 필요한 이유를 조합원들에게 잘 설명하고, 조합원들은 기부채납의 대가로 용적률 등 인센티브를 받는다는 사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공사비 상승의 여파가 향후 몇 년 동안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부동산 전문 리서치 업체 리얼투데이가 국토교통부의 주택건설실적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1~10월 전국 아파트 착공 실적은 18만 9676가구로 집계됐다. 관련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였던 전년 동기(12만 6694가구)에 비하면 49.7% 늘었지만 2018~2022년 연간 착공실적이 평균 38만 807가구였던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적은 수준이다. 특히 서울의 경우 전체 분양 물량에서 정비사업 비중이 65%에 달한다. 정비사업 차질이 서울 주택 공급에 미치는 악영향이 클 수밖에 없다. 함영진 우리은행 부동산리서치랩장은 “착공 물량 감소는 2년 6개월~3년 뒤 입주 물량이 줄어든다는 의미”라며 “인허가와 착공이 지난 2년간 많이 감소했기 때문에 공급 절벽을 피하기 위해서는 비아파트와 공공주택을 늘리려는 공공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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