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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 끝 장벽이 참사 키워…콘크리트 위 방위각 설치 의문"

■풀리지 않는 동체착륙 미스터리

엔진 이상→랜딩기어 고장 연동안돼…수동 전개 안됐을 수도

동력 1개 소실돼도 정상 비행 가능…2개 모두 이상 가능성

복행 후 반대 활주로 진입, 관제탑-조종사 교신 확인해봐야

엔진·랜딩기어 이상 탓 브레이크 3종 장치 다 작동 안된듯

30일 오후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서 유가족이 사고 여객기를 바라보며 오열하고 있다. 연합뉴스




179명의 사망자를 낸 무안국제공항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원인에 대한 많은 의문점들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다. 추락을 대비해 항공기에 랜딩기어 등 안전장치가 다수 장착돼 있었지만 그 모든 확률을 뚫고 사고가 발생했다는 점에 전문가들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또 당초 내리려 했던 활주로가 아닌 반대 방향 활주로에서 착륙을 시도한 점 등도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이외에 엔진 2기 미작동 여부, 동체 착륙 후 속도가 줄지 않은 점, 둔덕의 피해 확대 가능성 등도 앞으로 조사 과정에서 풀어야 할 대표적인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부는 의문투성이인 사고의 진상 규명을 위해 사고 현장에서 확보한 항공기 블랙박스를 김포공항 시험분석센터에 보내는 등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 인근의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전날 제주항공 여객기와의 충돌 여파로 파손돼 있다. 무안=성형주 기자


30일 전문가들은 이번 사고의 가장 큰 의문점으로 랜딩기어 미작동을 꼽았다. 사고 당시 항공기는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은 상태에서 동체 착륙을 시도했고 결국 외벽에 충돌한 후 폭발했다. 비행기 우측 엔진에서 불꽃이 튀는 등 엔진이나 유압 시스템 이상으로 랜딩기어가 내려오지 않았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다만 국토교통부는 “통상적으로 엔진 이상이 랜딩기어 고장과 연동되는 경우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랜딩기어는 수동으로도 조작이 가능하다. 수동 레버를 당기면 랜딩기어의 고정 장치가 풀려 중력에 의해 바퀴가 내려오는 원리다. 다만 랜딩기어가 내려오기까지는 20여 초의 시간이 걸린다.

전문가는 당시 상황이 급박해 랜딩기어를 수동으로 전개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정식항 충청대 항공자동차모빌리티학과 교수는 “착륙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복행을 하기 위해 랜딩기어를 내리지 않다가 상황이 급박해져 조치를 미처 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조류 충돌로 인해 엔진 1개가 손실됐다 해도 항공기 정상 운항에 지장이 없다는 점도 의문이다. 전문가는 엔진 2개에 이상이 생겼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정 교수는 “한쪽 엔진이 살아있으면 충분히 비행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에는 두 엔진 모두 문제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며 “고도가 낮은 상태에서 엔진 2개가 동력을 잃는 급박한 상황이 생겨 조종사가 메이데이를 요청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초 항공기가 착륙하려 했던 01번 활주로가 아닌 반대 방향인 19번 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한 점도 미스터리다. 사고 당시 항공기는 01활주로에 착륙을 시도하다 복행해 180도로 기수를 돌려 반대쪽에서 진입하는 19활주로로 착륙을 시도했다. 통상 항공기는 속도를 줄이기 위해 역풍이 부는 방향의 활주로로 진입하는데 이번 사고 항공기는 오히려 반대쪽에서 진입을 한 것이다.



박원태 항공운항학과 교수는 “통상 메이데이 요청이 들어오면 관제탑에서는 해당 항공기를 최우선으로 받아주게 돼 있다”며 “역풍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충분히 들어올 수 있는 상황이었을텐데 관제와 조종사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규명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엔진에 손상이 생겼다면 급하게 기수를 돌리자마자 착륙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추정했다.

30일 전남 무안군 무안국제공항 활주로에 전날 동체 착륙을 시도하다 충돌 후 폭발한 제주항공 여객기의 흔적과 잔해가 남아 있다. 연합뉴스


사고기가 충돌한 콘크리트 ‘둔덕’이 사고 규모를 키운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사고기가 둔덕에 충돌하지 않고 공항 경계까지 진행했으면 속도가 줄어 동체 착륙이 가능했을 수 있었다는 의견이다. 항공 분야의 한 전문가는 “로컬라이저 구조물이 콘크리트로 된 것이 참사를 키웠다”고 말했다. 한 외국 항공사 파일럿도 사고 당시 영상을 분석한 글에서 “항공기가 로컬라이저가 마련된 콘크리트 벽에 충돌해 참극이 발생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정부는 이 같은 지적에 대해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활주로 인근의 콘크리트 재질 방위각 시설은 다른 공항에도 설치돼 있다는 것이다. 주종완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진행한 브리핑에서 “무안공항은 활주로 종단 안전 구역 외곽의 활주로 끝단에서 약 251m 거리에 방위각 시설(로컬라이저)이 있다”며 “여수공항과 포항경주공항에도 같은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 방위각 시설이 설치돼 있다”고 설명했다.

동체 착륙 후 속도가 왜 줄지 않았는지도 의문점이다. 항공기의 제동 과정은 통상 바람을 이용하는 ‘에어로다이내믹 브레이크’와 제동장치를 사용하는 ‘엔진브레이크’, 추진장치를 역으로 이용하는 ‘엔진 역추진 브레이크’ 등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전문가는 해당 장치들이 모두 작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박 교수는 “에어로다이내믹은 항공기 뒷바퀴가 닿는 과정에서 기체로 바람을 받아 속도를 줄이는 방식인데 바퀴 자체가 닿지 않았다”며 “랜딩기어도 안 내려와 엔진브레이크는 물론, 엔진 이상이었다면 리버스 엔진도 사용이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국토부는 전날 사고 현장에서 확보한 블랙박스의 일종인 비행자료기록장치(FDR)와 조종실 음성기록장치(CVR)를 확보해 이날 오전 김포공항 시험분석센터로 보냈다. 국토부는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 기체 제작사인 보잉사와 함께 사고 조사를 진행하기로 했다. 미국과 프랑스가 합작 투자한 엔진 제조사 CFMI는 참여 여부를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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