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ID)이 발표한 지난해 국가 경쟁력 순위에서 한국의 ‘과학’ 경쟁력은 세계 2위인 반면은 ‘기술’ 경쟁력은 23위였다. 기술 경쟁력이 낮은 것도 문제지만 더 심각한 것은 하락 추세가 뚜렷하다는 점이다.
기술 경쟁력의 하락세는 산업의 모든 분야에서 실감할 수 있다. 올 들어 인공지능(AI)·로봇·양자 분야 등에서 한국의 경쟁력이 주요국 대비 현저하게 낮아졌고 주력 산업인 반도체·디스플레이·2차전지·화학 분야에서 중국과 대만 등에 추월당하는 상황이 됐다. 액화천연가스(LNG)선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조선 분야도 중국이 1위이며 자동차와 가전 등 일반 제조업 분야에서도 중국의 추격이 만만치 않다. 제약 시밀러나 K방산 부분의 약진이 있기는 하지만 넘겨주는 제조업에 비해 새로 획득하는 먹거리가 매우 취약하다. 중국의 롤모델은 한국의 압축 성장이었으며 전 세계의 모든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이 추종하고 싶어하는 경제 모델도 ‘한강의 기적’이다. 추격자는 많고 앞으로 나아가기는 쉽지 않다. 고도성장기의 탄력으로 경제지표가 좋았을 뿐이지 실제로 제조업은 20년간 서서히 기술 경쟁력을 잃어갔다. 경제계 인사들은 2010년대 초반 정도가 경쟁력의 정점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공교롭게도 IMID 순위상 기술 경쟁력 수준이 흔들리기 시작한 시점과 같다.
예술과 과학의 공통점은 경제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점이다. 대중음악과 클래식을 망라하고 K컬처가 세계적으로 명성을 날리고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K팝 덕분에 세계 어디를 가도 한국인이라서 대우받는 것도 좋은 일이고 우리가 문화 강국이 되는 것도 뿌듯한 일이다. 다만 과거의 유산에 기반한 관광이나 문화 예술로는 전 국민이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기에 부족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제조업 재건을 내세우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제조업은 중산층을 유지하고 사회적인 안정을 도모하기에 필수적이다.
IMID 순위에서 한국의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은 국가 예산 대비 5%에 근접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를 고려하면 현재의 성과가 높다고 말하기 어렵다. 유상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과학 분야의 성과를 기술 분야로 확산하고 그간 정부 R&D를 대부분 수행하던 국책연구소의 과학기술을 민간에 이전하는 것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과학기술의 대들보인 국책연구소들의 연구 성과가 코드분할다중접속(CDMA)이나 반도체, 전전자 교환기를 국산화하던 시절에 비해 대단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이번 기회에 국책연구소가 개발한 과학기술들이 국가 경쟁력 확보와 국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기술만 중요하고 과학은 안 해도 된다는 것은 절대 아니다. 다만 연구만을 위한 연구, 논문만을 위한 연구는 우리에게 사치라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우주항공청이 뉴 스페이스 시대를 맞아 우주 5대 강국, 우주산업 5대 강국의 포부를 안고 5월 개청했다. 우주항공청은 제4차 우주개발진흥 계획과 제3차 우주산업육성 계획에서 2045년까지 400조 원의 매출을 일으켜 글로벌 우주 매출의 10%를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내용이 선언적이며 정부의 의지를 나타낸 정도다.
우주항공청에서 능력이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 민간 전문가 출신의 정책국장과 산업국장도 근무를 시작했다. 이제는 우주 5대 강국, 우주산업 5대 강국을 만들 구체적인 계획도 세우고 실제로 추진해야 한다. 우주항공 산업 육성 계획이 따로 있고 우주개발 프로젝트가 따로 있어서는 안 된다. 우주항공청의 예산은 150억 원 수준의 우주기금 외에는 국가 R&D 예산뿐이고 그나마 연 3조~7조 원 규모의 주요국에 비하면 미약한 1조 원 수준이니 국가 R&D 예산의 큰 비중이 우주산업 육성과 연계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고 합리적인 결론이다. 특히 발사체와 위성 및 활용(위성통신, 항법, 영상 정보처리 등)에 대한 국가 프로젝트들은 우주산업 육성과의 연계성을 확실히 해야 할 것이다. 국책연구소의 기술도 단순 이전보다는 가급적 기술 확산 차원으로 빠르고 광범위하게 추진해야 하고 기술이전료도 후불제 형태로 부담을 줄여 국가가 개발한 우주과학기술이 빠르게 산업화되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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