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부가 국권 회복을 위해 온 국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했던 국채보상운동을 1월의 독립운동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1월의 6·25전쟁영웅에는 두매리 고지 점령에 공을 세운 안병섭 대한민국 육군 이등상사(전투 당시 일등중사)가 선정됐다.
국채보상운동은 국민의 관심과 참여 열기가 높아 전국적으로 확산된 대표적인 애국계몽운동이다. 1907년 일본이 한국의 근대 시설 개선, 철도 부설 등의 명목으로 도입한 각종 차관은 1300만 원에 달했다. 대한제국 1년 예산을 훨씬 뛰어넘는 금액이다. 일본의 경제적 예속에서 벗어나 재정적 자립을 이뤄야 한다는 위기의식이 고조된 1907년 2월 대구광문사의 김광제 사장과 서상돈 부사장은 “담배를 끊어 국채를 보상하자”는 건의서를 낭독하며 국채보상운동을 발의했다. 이어 각지에 국채보상취지서를 배포하고 민중대회를 개최해 참여를 독려했다. 양반과 부유층뿐 아니라 학생·부녀자·걸인·백정·마부까지 모금 운동에 동참할 정도로 열렬한 호응이 이어졌다. 대한매일신보에서 국채보상운동을 보도하자 서울에 국채보상기성회가 설립됐고 대구에서는 남일동패물폐지부인회가 설립되는 등 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됐다.
일본은 이를 방해하기 위해 갖은 공작을 벌였고 결국 국채보상운동은 1년 6개월 만에 중단됐다. 그러나 전 국민이 이끈 평화적인 항일운동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당시 모인 위탁금은 각지의 학교 설립 과정에서 경제적 토대가 되기도 했다.
보훈부는 1992년 1월부터 총 501명의 독립운동가를 선정해 그들의 생애와 공적을 알려왔다. 광복 80주년을 맞는 2025년에는 사건 중심의 다양한 독립운동을 국민에게 알린다는 취지에서 매월 ‘이달의 독립운동’을 선정·발표할 예정이다.
‘2025년 1월의 6·25전쟁영웅’으로는 경기도 연천군 두매리 고지 전투에서 특공조를 이끌고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투척, 고지 점령에 기여한 안병섭 이등상사가 선정됐다. 1924년생인 안 이등상사는 1949년 자원 입대했다. 38도선에서 경계 임무 중 6‧25전쟁이 발발했고 두매리 고지는 1951년 12월 중공군에 점령됐다. 두매리 고지는 해발 140m로 적을 감시하면서 향후 공세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지형이다. 국군 제15연대 제9중대 제2소대 선임하사관으로 두매리 고지 탈환 임무를 부여받은 안 이등상사는 4명의 특공조를 편성, 적 기관총 진지에 수류탄을 던져 파괴하는 전공을 세웠다. 이 과정에서 부상을 입었지만 그의 활약으로 제15연대는 기세를 몰아 공격에 나섰다. 덕분에 두매리 고지에 이어 122고지·148고지를 연이어 탈환할 수 있었다.
안 이등상사는 이후에도 임진강 방어전과 지리산 지구 무장공비 토벌 작전, 연천군 왕징면 일대 전투에 투입돼 많은 전공을 세웠다. 1952년 11월 28일 야간 수색 작전 중 적의 기습으로 가슴에 총탄을 맞고 전사했다.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이등상사로 1계급 특진과 충무무공훈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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