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을 주재료로 삼아 인간의 욕망을 차갑게 표현하는 설치 미술가 김병호가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에서 설치 작품을 전시한다. 철저하게 분업화된 생산 시스템 속에서 섬세하게 계획된 설계 도면을 바탕으로 이뤄지는 김병호의 작업은 그 자체로 합리주의에 매몰된 현대사회의 일면을 보여준다. ‘탐닉의 정원’이라는 이름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에서 작가는 황금색과 먹색, 은색이 어우러지는 금속 가지로 나무와 숲을 일군 후 이것을 ‘정원’이라고 명명한다.
작가는 커다란 타원구가 눈에 띄는 185개의 금속 나뭇가지를 가로로 엇갈리게 배치해 천장에 매달아 두거나, 나무처럼 세워둔 기둥에 꽂아 작품을 구성했다. 정원에는 푸른색 풀과 나무가 있어야 하지만 김병호가 만든 ‘탐닉의 정원’에는 오로지 금속만이 가득하다.
이번 전시에서는 2018년 해외에서 선보인 ‘수평 정원’을 국내에서 처음 만나볼 수 있다. 지하 1층 천장에 매달려 있는 금빛 조형물 ‘수평 정원’은 무게만 약 500kg에 이른다. 작가는 이 무게를 얼마나 잘 버텨낼 수 있을지 보여주는 기교에는 관심 없다. 그저 조형물은 관람객의 눈높이에 떠서 문명의 이기에 몸을 기댄 인류처럼, 가느다란 줄에 매달려 버틴다. ‘수평 정원’은 지하 1층의 고요한 공간에서도 간혹 흔들린다. 그 모습은 마치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있는 인류의 모습을 상징하는 듯하다.
1층에는 ‘57개의 수직 정원’이 전시됐다. 은빛 나무처럼 보이는 이 조형물은 사실 욕망이 솟구쳐 주체하지 못하는 ‘나’를 상징하기도 한다. 관람객은 은빛 나뭇가지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삶의 욕망을 되짚어 볼 수 있다.
3층에서는 평면 및 선의 조형성에 주목한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정원의 단면’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된 4점의 작품은 무광택의 검은색 피막을 입고 전시 공간과 대비를 이루며 곡면의 조형성을 강조한다. 인간은 단면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 역시 욕망의 일부다. 작가는 대상을 절단하고 평면으로 드러냄으로써 내부 구조를 궁금해 하는 관람객의 욕망을 아주 일부분만 충족 시킨다.
‘아홉 번의 관찰’은 은빛과 검정의 원판이 겹겹이 쌓여 구성된 평면적 조형 조각이다. 아홉개의 단면은 서로를 바라보고 있다. 각각의 원판에 비친 마주본 거울은 틈만 나면 서로를 관찰하고 있는 현대 사회의 인간을 보여주는 듯하다. 작가는 “삶이 결국 관찰의 연속”이라며 “우리의 모든 행위는 자신을 믿기 위해 자신을 잘 들여다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2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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