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정책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 관심이 집중되는 가운데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연준에 대한 독립성 침해를 최대 위협 요인으로 지목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4일(현지 시간) 2025 전미경제학회(AEA) 연례총회에서 “앞으로의 테일리스크(tail risk·꼬리 위험)는 의회가 (행정부의 개입이 가능하도록) 연준의 법적 지위를 변경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리스크는 발생 가능성은 낮지만 현실화할 경우 충격적 여파를 몰고 오는 위험을 말한다. 버냉키 전 의장은 세션에 함께 참석한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 출신 제이슨 퍼먼 하버드대 교수가 “연준의 독립성 침해가 앞으로 경제에서 가장 큰 테일리스크일 것”이라고 말하자 즉시 동의의 뜻을 내비치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트럼프는 대선 후보 시절 “적어도 연준의 금리 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이 의견을 낼 수는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등 백악관이나 행정부가 통화정책에 개입해야 한다는 의사를 내비친 바 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연준은 단순히 금융시장이 정책을 신뢰하게 만드는 수준을 넘어 의회와 대중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며 “연준이 독립성을 잃는 것이 시장과 인플레이션에 얼마나 나쁜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관세와 이민, 세금 인하 등과 같은 트럼프의 주요 정책은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이 제한적이라고 봤다. 그는 “이민을 제한하면 노동력이 줄지만 동시에 소비자도 줄어든다”며 “경제 전체의 수요 공급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관세 역시 1기 트럼프 행정부 당시 경험상 연준의 대응이 필요할 정도의 물가 상승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했다. 다만 그는 “이 같은 정책이 농업이나 건설과 같은 특정 산업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며 산업계에 끼칠 부작용을 우려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현재 2.5% 인플레이션, 4% 실업률은 (내가 고안한) 경제 모델에 부합하는 수치”라며 “주거 임대료와 같은 부문에서 아직 공급 충격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막대한 경제적 비용을 치르지 않고 인플레이션을 개선할 수 있다는 데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한편 메리 데일리 샌프란시스코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별도 세션에서 “현재 경제는 견조하고 고용과 물가 리스크는 균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금리 인하를 서두를 필요 없이 지켜볼 수 있다”며 금리 동결이 한동안 계속될 가능성을 제시했다. 퍼먼 교수도 서울경제신문 기자와의 대화에서 “현 상황에서는 4%대의 기준금리가 적절하다”며 “연준은 경제가 예상 외로 약화돼야 금리를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테일리스크 : 발생할 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게 되면 자산 가치에 엄청난 영향을 줄 수 있는 위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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