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계엄·탄핵 정국의 혼란을 틈타 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이미 지난해 9월 공청회를 마친 ‘제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전기본)’에 담긴 원자력발전소 건설 계획을 축소하지 않으면 국회 보고를 받지 않겠다고 정부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전기본은 정부가 2년 주기로 수립하는 15년짜리 에너지 계획으로, 국회 보고 절차를 거쳐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전력정책심의위원회가 최종 의결한다. 2038년까지의 안정적 전력 수급의 근간이 될 11차 전기본은 반도체·인공지능(AI) 등 첨단산업의 전력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소형모듈원전(SMR)을 포함해 최대 4기의 원전 건설 방안을 담고 있다.
거대 야당의 거부에 막혀 11차 전기본이 표류할 경우 우리나라의 중장기 에너지 전략이 차질을 빚게 된다.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 불투명해지면서 민간 발전 기업의 사업 계획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용인 반도체 산업단지 송변전 및 양수발전 계획 실행도 어렵게 된다. 원전 정책에 제동이 걸리면 첨단산업 육성을 위한 전력 수요를 감당할 수 없게 되고 수출 동력이 약화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우리 원전 산업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 과속 강행으로 인해 고사 직전까지 내몰렸다가 가까스로 회복돼 체코·불가리아 등으로 수출되는 차세대 먹거리 산업으로 도약하고 있다. 그런데 민주당이 또다시 K원전의 발목을 잡는다면 에너지 안보와 미래 국가 경쟁력은 돌이킬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국가 경제의 근간인 에너지 산업이 더이상 정치와 이념의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 주요국들이 에너지 주권을 확립하고 AI발(發)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원전 산업 육성에 속도를 내는 와중에 낡은 이념의 틀에 갇혀 우리만 뒷걸음질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재생에너지만으로 탄소 중립을 실현하려면 2050년까지 최대 96조 원의 비용이 발생한다는 분석이 나올 정도로 미래 에너지 안보 확립에 원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정치권은 원전·재생에너지 등을 두루 활용하는 에너지 믹스 정책 실현에 적극 협조해야 한다. 특히 여야가 이미 합의한 국가기간전력망확충특별법을 조속히 통과시켜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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