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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결단式 권력투쟁 끊고 '상시적 대화' 이끌 시스템 절실

[신년기획-미래를 위한 정치 정상화]

<3>후진적 정치문화 '리셋'

막말·혐오정치, 지지자에 전이

정치인 피습·테러 협박 이어져

'대의 민주주의' 작동에 경고음

비례의석 늘려 완충지대 넓히고

美처럼 '상향식 공천제' 도입을





“선명성의 칼날로 서로를 베고 다투니 서운함을 분한 마음으로 옮겨 분열을 거듭하며 무리를 지어 원수가 되는 동안 백성들은 세금을 감당하지 못해 마을을 떠나고 있습니다.”

3선 국회의원을 끝으로 지난해 정계를 은퇴한 도종환 시인의 시 ‘사림(士林)’ 중 일부다. 그의 지적대로 한국 정치는 조선시대 사화의 피비린내를 연상케 할 만큼 ‘사생결단’의 권력투쟁에만 매몰돼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거대 야당은 대통령과 국무위원, 검사 등에 29건의 탄핵소추안을 발의했다. 최근 40년 동안 국회에서 50건의 탄핵안이 발의됐는데 절반을 훌쩍 넘는다. 윤석열 대통령도 직무 중 25회의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으며 2명의 대통령 권한대행이 8개 법안에 더 거부권을 행사해 33회에 달한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노태우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행사한 거부권(16회)보다 2배나 많다.

여야 간 극단적 대결은 동료 의원의 정치생명을 끊는 제명안 발의에서도 나타난다. 19대 국회까지 0건이던 국회의원 제명 촉구 결의안은 △20대 국회 1건 △21대 국회 2건 △22대 국회 6건으로 껑충 뛰었다. 의회 민주주의의 상징으로 꼽히는 청문회는 정쟁의 장으로 남용돼 22대 국회 개원 후 6개월간 야당 주도로 열네 번이나 열려 막말과 고성, 삿대질이 주로 오갔다. 주호영 국회 부의장은 “대화와 협상을 해야 할 정치 파트너를 악마화하는 풍토가 훨씬 심해지고 있다”며 “저속한 말과 튀는 발언이 지지자들에게 오히려 박수를 받고 이를 제지할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등 자정 작용은 유명무실해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당을 초월해 법안을 공동 발의하는 의원들 간 친분 지수는 19대 국회 7.1에서 20대 6.5, 21대 6.3으로 계속 떨어지고 있다. 정치 양극화는 이재명·배현진 의원 등 주요 정치인들에 대한 테러 사건을 촉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여야 당사를 겨냥한 폭탄 테러 협박으로 이어지는 실정이다. 이재묵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상대를 인정하지 않는 극단적 갈등이 이어지며 정치의 ‘대의(代議) 기능’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며 “의원들도 거리로 나가 팬덤에 의존하면서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짚었다.

이에 따라 정치가 국민과 경제의 짐이 아닌 활력소가 되려면 상시적으로 여야가 대화와 협상을 할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시급히 구축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촉구한다. 이 교수는 “비례대표 의석수를 늘려 이른바 완충지대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또 A당이 싫으면 B당이 반사이익을 얻는 게 아니라 C당·D당이 원내에 진입할 수 있게 선거의 비례성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대 선거구제 도입 등 선거법 개정의 필요성을 거론한 것이다.

정당의 공천 제도를 수술해 타협과 설득, 합리적 정치 문화가 국회 안팎에 뿌리내릴 수 있게 하자는 조언도 나온다. 엄기홍 경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당의 공천 제도를 미국의 ‘오픈 프라이머리’처럼 상향식으로 하면 지도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에 따라 의정 활동을 하는 의원들이 늘고 당 지도부 역시 당리당략에 얽매이지 않아도 돼 여야 간 상시적 협상 문화가 정치인들에게 전이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의원들 간 상호 비방과 막말을 엄격하게 제재할 장치도 필요하다. 국회는 10년 전 독일 연방의회처럼 의원의 명예훼손이나 모욕적 발언에 대해 면책특권을 제외하는 방안을 검토했는데 다시 추진할 만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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