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혈 낭자한 게임장, 네가 죽어야 내가 살 수 있는 살벌한 ‘오징어 게임장’ 한편에서는 따뜻한 가족, 이웃 같은 분위기가 만들어진다. 죽음의 게임장에서 이같은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낸 주인공은 바로 도박 빚을 진 아들 용식의 빚을 갚기 위해 게임에 뛰어든 금자다.
때로는 오지랖 넓게 게임 참여자들의 사생활에 대해 매너 없이 불쑥 질문을 하고, 아는 척을 하고, 늦게 얻은 듯한 아들 용식(양동근 분)을 애지중지하면서도 기센 엄마로 돌변해 윽박지르는 금자 역에서 올해로 배우 경력 43년 차 여배우의 아우라가 폭발했다. 선을 넘는 간섭을 하기도 하고 불필요한 관심을 보여 불편하게도 하지만 이내 따뜻한 시선으로 미혼 임산부 준희(조유리 분)도 트랜스젠더 현주(박성훈 분)도 품어내 웃음과 온기 담당을 하며 ‘오징어 게임’ 시즌2의 ‘신스틸러’이자 시즌3에서 의미심장한 활약을 펼치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강애심을 최근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오랜 연극 배우 생활을 하며 드라마·영화·뮤지컬 등 다양한 장르에서 활동을 했지만 출연 사실만으로 단번에 ‘글로벌 스타’에 예약되는 ‘오징어 게임’ 시즌2 캐스팅 확정을 받았을 때의 기분은 어땠을까? 그는 당시 상황을 그대로 재현해 보이듯 “이거는 내 것이 아니야. 아니야, 이게 뭐가 잘못 됐어, 꿈일 수도 있고 아니면 중간에 틀어져서 내가 안 될 수도 있어, 그러니까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아야지"라고 몇 번이고 다짐했다고 떠올렸다. 동티 날지 몰라서 정말 꽁꽁 숨겼다고. 그런데 촬영 한 달을 앞두고 미끄러져 크게 다쳤다고 했다. 그는 “미끄러질 때 머리를 다쳐 뇌진탕에 걸릴 것 같아 머리를 이렇게 손으로 막았더니 손이 완전히 망가졌다"며 “너무 아파서 엉엉 울었다. 반 깁스를 하고 첫 촬영장에 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게임을 해야 하는데 이렇게 팔을 다쳐서 어쩌나, 역시 이 역을 내 것이 아니었다 보다 하고, 다 내려놓고 촬영장에 갔다"며 “저를 보고 다들 놀랐고 솔직하게 상황을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다행이 뼈에 금이 간 게 아니라 근육을 다쳐 촬영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오징어 게임' 액땜은 내가 다 했네라고 생각을 하기도 했다"며 당시를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 내리기도 했다. 어쩌면 평생 한 번 찾아 올까 말까 한 축복처럼 찾아 온 기회를 어이 없게 놓치게 될 위기에서도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를 밝힌 그의 용기가 그를 도왔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어떻게든 작품에서 빠지지 않기 위해 아픈 것을 숨기는 방법을 택할 수도 있었는데 작품에 누가 되면 안되기 때문에 솔직하게 자신의 상태에 대해 알린 것이다.
글로벌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는 작품이지만 불호평에 대해서 신경이 쓰인다고 했다. 그는 “처음에 안 좋다는 평가가 나와서 정말 너무 속상했다”며 “그런데 조금씩 반응이 좋은 쪽으로 바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역시 황 감독과 다른 배우들과 마찬가지로 시즌3에 대해 기대해 달라고 했다. 그는 “정말 시즌3는 너무 너무 재밌고 좋다”며 “스포라서 말할 수 없는데 정말 기대해 달라”고 강조했다.
최근 공개된 넷플릭스 유튜브 공식 계정에서 그는 ‘눈물 폭탄’을 예고해 시즌3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높이는 한편 용식·금자 모자의 이야기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했다.
축복 같은 기회를 42년 만에 만난 그는 그동안 쌓아온 배우로서의 모든 역량을 금자 역에서 쏟아냈다. 특히 아들 용식 역의 양동근과의 ‘케미'는 ‘오겜2’의 ‘신스틸러’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동안 엄마, 할머니 등 역할을 두루 해온 그는 양동근에게 황동혁 감독이 처음 제시한 용식의 캐릭터와는 다른 해석을 시도할 것으로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황 감독이 주문한 용식은 날이 서 있고, 찌들고 매트한 캐릭터였지만 그렇게 갈 경우 작품의 결에 잘 맞지 않을 것 같다고 조언했다는 것. 이에 대해 강애심은 “양동근 씨가 너무 저를 좋은 사람으로 만들어 준 것"이라며 손사래를 쳤다. 그러면서 그는 “서로 우리가 잘 맞았다”며 “원래 양동근 씨 팬이어서 좋은 감정으로 만났고, 양동근 씨가 사람의 좋은 면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는 그런 긍정적인 면이 있는 분이다. 서로 좋은 에너지를 준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강인하기도 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짠한 한국의 엄마, 한국의 아줌마 즉 K엄마, K아줌마 금자는 어떻게 그에 의해 만들어 졌을까? 그는 금자의 전사에 대해 설정하고 캐릭터를 해석하고 빌드업했다고 했다. 그는 “일단 충청도나 전라도 등 지방에서 상경을 해서 아직 사투리 억양이 남아 있고, 채소 가게를 하다가 그것마저 아들이 다 말아 먹고, 바람 피우는 남편에게 맞기도 했던 금자의 전사를 만들었다”며 “6·25 때도 살아 남았다고 하고, 그건 정말 말이 안되는 거고 아마 그때 태어나서 응애, 응애 할 때였을 거고, 총알로 공기 놀이 했다 이런 것은 그냥 약간의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 설정했다”고 설명했다.
K엄마 전문 배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최근에도 드라마 ‘정숙한 세일즈’ ‘멜로가 체질’,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 등에서 엄마 역을 했다. 엄마의 이미지라는 게 거의 비슷하긴 하지만 또 너무나 다른 게 엄마들의 전사이기도 하다. 강애심이 맡은 엄마들의 전사는 그동안 배우 생활을 하면서 쌓은 커리어와 데이터를 통해 탄생해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그렇다면 K엄마로 ‘제2의 윤여정’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강애심의 전사는 무엇일까? 어떻게 그는 배우의 꿈을 꾸게 됐을까? 그를 배우로 이끈 것은 ‘사운드 오브 뮤직’이었다고. 그는 “우리나라에 ‘사운드 오브 뮤직’이라는 영화가 처음 들어왔을 때 제가 아마 5~6살인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아주 어렸을 때였는데 문화적 충격이었다"며 “쥴리 앤드류스가 노래하고 그 표정을 보는 게 너무 좋아서 노래를 계속 흥얼거렸다”고 떠올렸다. 그러면서 “그리고 초등학교를 들어갔는데, 문예 발표회 때 노래를 잘 하니까 오디션을 보라고 해서 수업을 빠져 가면서 ‘백설공주’ 오디션을 봤는데 떨어졌다”며 “그런데 나보다 노래를 못 하는 애가 토끼 역을 하고 있어서 그게 너무 속상했다. 내가 저 무대에 서 있는데 왜 내가 여기 있지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합창반을 했을 정도로 뛰어난 노래 실력을 자랑하지만 사실, 합창반을 했던 것은 연극반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는 “대학에 가서는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서 연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강애심은 43년 동안 어쩌면 ‘사운드 오브 뮤직’을 본 순간부터 배우 아닌 길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 같다. “연기 아니면 저는 재미 있는 게 하나도 없어요. 똑같은 대사를 매일 하는 거잖아요, 연극은. 그래도 저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고, 한 번도 지루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요.”
43년 만에 물을 만난 물고기 같은 배우 강애심. 그동안 해왔던 역할이 아닌 새로운 도전에 대한 갈망은 없을까? 그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섹시함이 있다. 섹시한 역할을 해보고 싶지 않냐고 묻자 단번에 “예스”라며 웃어 보였다. 그는 “정말 하고 싶다”며 샤론 스톤의 그 시그니 처 다리 자세를 설명하기도 했다. 그는 “제가 섹시한 거 로맨스를 안 해본 것은 아니다”며 “향단이의 섹시함, 로맨스는 해봤다"며 유쾌하게 웃어 보였다. 그러면서 그는 “하인들이 로맨스, 사랑은 부각되지 않는다”며 아쉬운 표정을 보이다가 “정말 너무 너무 섹시한 역할 해보고 싶다. 잘 할 수 있다”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시즌3가 공개돼 봐야 정확하게 알겠지만 그가 어떤 활약을 펼칠지 여부에 에미상, 골든글로브 시상식의 여우조연상이 최초 한국인에게 돌아갈 수 있을지 판가름 될 것이다. 같은 연극 배우 출신이 오영수는 시즌1에서 오일남 역을 맡아 2022년 제79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 TV부문 남우조연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