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계엄 소동으로 국군의 강점과 취약점이 노출됐다. 우리 군이 원칙과 가치를 지키고자 하는 조직이라는 점과 생각하는 군대라는 것을 보여줬다. 반면 국군 지휘부의 단면도 드러났다. 군 출신 장관이 자신이 지휘하는 군대를 이해하지 못하고, 사령관들은 소신 없이 지시에 따르다가 눈치만 보고 우왕좌왕하며 책임만 회피하려 했다. 또 나라를 지키라고 믿고 맡긴 권한을 남용하고 부하를 속인 장군들은 적에게 써야 할 특수부대원들을 동원하면서 공작대원들을 불법 운용했다. 아무리 변명하고 설명해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군은 적법한 명령만 따라야 하고 적법한 명령만 내려야 하는데 현장의 군인들은 옳고 그른 명령을 구분했기에 우리 군에 대한 신뢰가 있다.
이번 소동의 문제점을 일부 장군들과 특정 출신들의 문제로만 보면 안 된다. 우선 언제부터인가 군 내에 형성된 줄 대기 현상을 봐야 한다. 장군이 되기 위해 국회의원이나 지인들을 동원해 진급과 보직을 받으려고 노력하는 장교들이 바로 이 시대 정치장교의 전형이다. 일단 장군이 되면 정치 인맥을 공고히 하고 언론과 접촉해 군 내 기밀을 흘려준다. 모든 장군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원칙을 지키며 본연의 임무에 매진하는 장군은 정치장교들에게 속수무책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이 군에만 있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 전반이 미쳐 돌아가는 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지 않은가? 직업군인이 되는 과정에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 군인의 기본이라고 배운다. 가정교육의 부재와 학교교육의 혼란 속에서도 다행히 대부분의 군인들은 이를 가슴속에 새기며 산다.
일반적인 육군 부대들의 고충은 상상을 초월한다. 육군 부대장들은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과도하게 노력해야 해 나라를 지키는 것은 후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육군은 500명을 지휘하는 대대장이나 50명을 지휘하는 대대장을 똑같이 평가한다. 10배에 달하는 위험 부담을 안고 지휘하는 군인들에게 자부심 외에는 그 어떤 보상도 없다. 정치장교들은 전쟁도 나지 않을 건데 왜 저렇게 열심히 훈련을 하냐고 비웃는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2020년부터 3년간 이어진 코로나19 팬데믹은 훈련을 회피하는 좋은 핑계가 됐고, 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이고 평화 분위기를 앞세운 한반도 정치는 군의 사기를 더욱 저하시키고 말았다. 이러한 사이에 많은 군인들이 보람을 찾지 못하고 군을 떠나고 있다. 그나마 사명감 있는 군인들이 인내를 갖고 부대를 지키고 있으나 이들마저도 힘겹게 지낸다.
이번 계엄 소동을 계기로 군의 근본적인 애로 사항을 고쳐야 한다. 정치인과 언론인 접촉을 통제하고 줄 대기 관행을 일소할 필요가 있다. 군 복무 기간을 다시 24개월로 환원하되 군 가산점 제도와 같은 보상 제도를 보완하고 군 복무를 이행하지 않은 사람들을 사회 전체가 비판적으로 봐야 한다. 의사고시·사법시험 합격자도 병역을 이행하고 군의관과 법무관은 별도로 양성하든지 민간에 외주를 주면 된다.
군대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조직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 군대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고, 나아가 대한민국 전체의 발전을 위한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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