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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잃어버린 20년' 겪지 않으려면

◆박상준 와세다대 국제학술원 교수

기술 中에 밀리고 고령화 내수부진

韓, 변화 대응못했던 日과 닮은꼴

정부·노조 기업 진화 도와야 희망





지난해 11월 기준 한국 20대 후반 남성과 여성의 고용률은 각각 71%와 74.9%로 예년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같은 시기 일본 20대 후반 남성과 여성의 고용률은 각각 89.9%와 86.7%를 기록했다. 20대의 정규직 비율도 일본이 한국보다 높다. 일본에서는 지난 10년간 정규직 일자리가 약 300만 개 증가했다. 그래서 20대 청년의 정규직 취업이 이전보다 쉬워졌다.

일본에서 일자리가 늘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기업의 실적 개선이다. 실적이 개선돼 고용을 늘릴 여유가 생겼다. 닛케이지수가 4만을 넘어 사상 최고를 기록했던 지난해 여름에는 기업의 영업이익도 사상 최대를 나타냈다. 지금 한국 청년들이 취업 빙하기를 겪고 주가가 지지부진한 것은 기업의 실적이 좋지 않고 전망마저 밝지 않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시가총액 상위에 포진돼 있는 소니·히타치 등 유명 기업도 불과 10여 년 전에는 파산의 위기를 겪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사상 최대 실적을 연거푸 경신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진화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환경 변화에 적응해 진화하지 않는 생물은 도태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일본 경제의 버블이 붕괴된 1990년대에 미국에서는 세계경제의 판도를 뒤흔들 정보기술(IT) 기업들이 태동했다. 한국과 대만 기업들은 반도체와 가전에서 일본 기업의 기술력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청년 인구 감소와 고령화로 국내 시장은 축소되고 있었다. 일본 기업들은 과거의 성공 신화에 매몰돼 이러한 변화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했다. 잃어버린 20년이 지나고 나서야 진화의 필요성을 절감한 리더들이 등장했고, 뼈를 깎는 아픔을 동반한 과감한 사업 재편이 추진됐다.

일본 기업이 경험한, 그리고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던 환경 변화를 지금 한국 기업이 그대로 겪고 있다. 우주, 인공지능(AI), 양자컴퓨터 등 새로운 산업에서는 선두를 빼앗겼고, 철강·조선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최고라고 믿었던 전기차·배터리에서도 중국에 밀리는 형편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국내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것도 일본의 닮은꼴이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에 희망이 있는 것은 1990년대의 일본 기업과 달리 2025년의 한국 기업은 환경의 변화를 직시하고 진화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사업 개척을 위한 기술 투자와 인수합병(M&A), 해외 기업과의 협업, 경쟁력을 잃은 기존 사업의 매각 등 움직임이 분주하다.

이른 시일 내에 진화의 결실을 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2025년은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시작되면서 세계경제의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있다. 아시아 통화가 모두 불안한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 기업도 올해는 실적을 낙관하지 않는다. 최근 닛케이지수가 불안한 등락을 거듭하는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업 재편은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꾸준히 추진해야 한다. 정부의 지원과 노조의 협조도 절실하다. 단지 보조금 문제가 아니다.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가 난관에 처하자 일본 정부가 발 벗고 나섰다. 일본 노조는 기업의 실적 개선이 분명해질 때까지 임금 인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한국 경제의 미래는 한국 기업 진화의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 2025년에 그 방향을 제대로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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