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권 재건축 단지에서 ‘상가 통매각’이 잇따르고 있다. 고금리와 경기불황 등에 상가 분양시장이 침체하자 조합이 수익성을 낮추더라도 미분양 리스크를 줄이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자잿값 상승에 공사비가 뛰면서 조합의 안정적인 현금 확보가 중요해진 것도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8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서울 서초구 신반포4지구 재건축(메이플자이)조합은 6일 근린생활시설(상가) 일반분양분 일괄매각 공고를 냈다. 상가 총 213개실 중 조합원 몫을 제외한 일반분양 물량을 모두 특정 업체에 매각하는 것이다. 매각 대상은 지하 4~5층, 전용면적 약 3498㎡, 59개실이다. 입찰보증금은 30억 원으로, 오는 22일까지 최고가를 써낸 업체를 최종 낙찰자로 선정할 계획이다. 신반포4지구를 재건축한 메이플자이(3307가구)는 오는 6월 입주를 시작할 예정이다.
부동산 업계에서는 300~400억 원 수준에서 낙찰가가 결정될 것으로 보고 있다. 앞서 서초구 ‘래미안 원베일리’ 조합은 2022년 상가 312개실을 1700억 원대에 일괄매각한 바 있다. 한 상업용 부동산 전문가는 “부동산 침체기였던 2022년보다는 상가 분양시장이 활발하지만, 경기 불황에 입지 조건 등을 따졌을 때 래미안 원베일리와 비슷한 수준에서 매각가가 결정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오는 2027년 입주를 앞둔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디에이치클래스트)도 상가 일반분양분을 통매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밖에 강남구 ‘아크로삼성’과 동대문구 ‘휘경자이디센시아’ 등 서울 주요 재건축 단지들도 현재 상가 통매각을 추진 중이다.
재건축 조합이 아파트처럼 상가를 개별 분양하지 않고 통매각에 나서는 가장 큰 요인으로는 상가 시장 침체가 꼽힌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서울 집합상가 공실률은 9.5%로 2022년 4분기(8.1%)보다 1.4%포인트 상승했다.
부동산 선행지표인 경매지표도 나빠지고 있다. 경·공매 데이터 전문기업 지지옥션에 따르면 지난해 서울의 상가 경매 진행 건수는 2769건으로, 전년 대비 70% 증가했다. 반면 같은 기간 낙찰률은 20.6%에서 16.4%로 하락했다. 상가 일괄매각은 개별 분양보다 분양 수익이 상대적으로 낮지만, 조합 입장에서는 미분양 리스크를 덜 수 있다.
여기에 최근 공사비 상승에 조합의 현금 흐름이 중요해진 것도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나온다. 메이플자이의 경우 지난해 시공사로부터 기존 9300억 원에서 1조 4000억 원으로 공사비를 인상해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디에이치클래스트 조합도 지난해 시공사와 3.3㎡당 공사비를 556만 원에서 793만 원으로 인상하는 데 합의했다. 실제 메이플자이 조합 측은 안정적인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통상 매각금액의 10% 수준인 계약금 비율을 20%까지 상향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강남 주요 알짜단지를 제외하고는 상가 통매각이 난항을 겪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실제로 송파구 ‘힐스테이트e편한세상문정’ 조합은 2023년 말 최저입찰가 90억 원으로 상가 19개실 통매각을 추진했는데, 수요가 없자 85억 원으로 금액을 낮춘 데 이어 지난해 개별 분양으로 선회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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