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청구 공사비는 건설업황이 좋을 경우 시공사의 미래 수익(자산)이 되지만 미분양이 쌓이는 시기에는 회수가 어려운 ‘악성 채권’ 같은 존재다. 시공사는 대부분의 주택 사업장에서 사업 주체인 시행사와 준공 이후 수분양자들의 잔금 납입이 끝나야 공사비를 지급하는 분양불 방식으로 계약을 맺는다. 주택이 다 팔리지 않으면 시공사가 선투입한 공사비를 제대로 받을 수 있을지 여부조차 불투명한 것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1만 8307가구로 전월(1만 7262가구) 대비 6.1% 늘었다. 2020년 7월 1만 8560가구 이후 4년 3개월 만에 최대치다. 지방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한국부동산원 청약홈에 따르면 지난해 지방에서 1·2순위 청약을 진행한 총 149곳의 아파트 단지 중 73곳에서 미분양이 발생했다. 착공에 1~2년 선행하는 2023~2024년 누적 지역별 인허가 가구 수에서 지방 비중이 55%를 차지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같은 미분양 물량은 올해도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업계의 한 관계자는 “인천과 경기도 외곽 지역 중심으로 미분양이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며 “특히 지방의 경우 규모가 작은 지역 건설사 비중이 많아 미분양에 따른 자금 회수가 지연될 시 유동성 위기에 노출될 위험이 크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부도가 발생한 지역 건설사인 △제일건설 △신태양건설 △시온건설개발 △한호건설 등도 미분양 적체로 유동성 위기를 겪다 문을 닫았다.
도급 순위 19위인 코오롱글로벌도 지방 사업장 미분양 여파로 경영난을 겪고 있다. 코오롱글로벌은 지난해 분양한 △울산 야음동 ‘번영로 하늘채 라크뷰’ △대전 봉명동 ‘유성 하늘채 하이에르’ 등에서 미분양이 대거 발생하면서 손실 위험이 커졌다. 여기에 △안양덕현 재개발사업 △인천송도 지주택사업 등 준공 예정인 사업장에서 미청구 공사비가 급증하면서 2022년 2104억 원이던 영업현금흐름이 2024년 3분기 기준 2133억 원의 순손실을 기록해 적자 전환했다.
KCC건설은 지난해 준공한 경기 양주시 타운하우스 ‘라피아노 스위첸 양주옥정’ 사업장에서 1100억 원의 공사 미수금을 기록했다. 지하 1층~지상 4층, 34개 동, 456가구로 조성된 이곳은 선착순 동·호수 지정 계약을 마치고도 아직 미분양이 남아 있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일부 지방사업장의 경우 시세가 분양가 아래로 떨어지면서 입주를 포기하는 사태도 발생하고 있다”며 “계약금과 중도금을 포기하고 잔금 납입을 거부하면서 시행사와 시공사가 공사비 회수에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분양 물량을 모두 ‘완판’한 사업장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건설사들이 최근 2~3년간 급등한 공사비에 정해진 시일까지 준공하겠다는 ‘책임준공’ 계약에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시장에서는 2020~2022년 인건비 포함 부대비용을 감안할 때 공사비가 30% 이상 오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공사비를 선투입해야 하는 건설사의 경우 현금 유출 부담이 그만큼 증가한 셈이다. 일부 현장에서는 원자재 값 급등 등의 여파에 따른 물가상승분을 반영해 공사비를 현실적으로 조정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지만 녹록지 않다. 대표적인 사업장이 롯데건설이 시공하는 ‘구의역 롯데캐슬 이스트폴’이다. 롯데건설은 지난해 국토부의 표준건축비가 대폭 상승한 후 발주처인 KT에 1000억 원대 공사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진척이 없다. 롯데건설은 당장 책임준공 기한이 3월로 다가온 만큼 손실 가능성을 안고도 공사를 이어가는 중이다.
선투입하는 공사비 규모가 늘어난 가운데 회수 가능성은 낮아지면서 1군 건설사도 재무 안정성에 빨간불이 켜졌다. GS건설은 최근 신용평가에서 단기신용등급이 A2로 하향 조정됐다. 부산 지사동 산업단지 조성사업에서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해 1312억 원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을 대위변제하는 등 현금 유출이 늘어난 탓이다. 공사 원가 상승으로 수익성이 떨어진 만큼 재무 안정성이 단기간 내 개선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 만큼 추가 신용도 하락 가능성도 열려 있다.
문제는 일부 사업장에 제공한 연대보증에 따른 우발채무가 현실화할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GS건설은 신반포4지구재건축정비사업장과 부산 파크시티 사업장에 사업비 대출 연대보증을 서면서 단기신용등급이 A3+ 미만으로 떨어질 경우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한다는 트리거 조항을 달았다. 신용도가 세 단계 더 떨어질 경우 각각 1127억 원, 1884억 원의 사업비 대출을 즉시 상환해야 한다. 책임준공 미이행시 조건부 채무 인수를 하거나 손해배상 조항을 건 사업장 규모도 7조 6153억 원에 달한다. 전지훈 한국신용평가 연구원은 “분양시장 부진이 장기화되고 건설 투자심리가 냉각되는 등 대외 환경이 비우호적인 만큼 수익성 회복이나 자산 매각 등이 당초 예상 수준에 미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며 “여기에 PF 우발채무 리스크가 현실화할 경우 재무구조 개선이 늦어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현대건설도 지난해 말 PF 리스크 관리 협의체를 신설하는 등 우발채무 부담을 줄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간 사업 수주를 위해 열어놓았던 연대보증과 책임준공, 프로젝트금융투자회사(PFV) 지분투자 등을 철저하게 관리하겠다는 의미다. 현대건설은 최근 가양동 CJ부지 개발 사업에 후순위대출자로 참여하면서 기존 연대보증을 섰던 1조 7000억 원 규모의 브리지론을 본PF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비슷한 시기 은평 시니어타운 사업장(은평진관동PFV)에도 지분투자와 브리지론 보증을 섰지만 시공권을 포기하고 동원건설산업에 넘겼다. 개발업계의 한 관계자는 “은평 시니어타운 사업은 현대건설이 보통주 28%를 보유하고 시공사로 참여하는 등 의욕을 보이던 사업장”이라며 “그러나 공사비가 낮은 대체 시공사를 물색해 사업성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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